[윤상길의 행복글방] 대한민국의 거꾸로 가는 ‘행복’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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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대한민국의 거꾸로 가는 ‘행복’ 시계
  • 입력 : 2021. 11.29(월) 10:21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전국에서 활동 중인 예술계 관계자 5596명을 대상으로 예술지원 정책에 대한 인식과 미래수요에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들은 예술활동 및 예술의 가치에 높은 자부심과 만족도를 갖지만 경제적 이윤 창출이나 사회적 인정 여부에 대해선 낮게 평가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행복하세요”라는 인사는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부자되세요”라는 인사보다 우선한다. ‘행복’에는 ‘사랑’, ‘건강’, ‘돈’이라는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가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인가는 당사자만이 느낄 뿐이고, 그 누구와 비교할 대상도 아니다.

누군가가 “당신은 행복하신가요?”라고 묻는다면, 참으로 간단하지만 쉽사리 대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하다”인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수치로 나타낸 ‘행복지수’로 그 정도를 비교한다.

‘행복지수’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스스로 측정하는 지수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과 인생 상담사 코언이 만들어 2002년 처음 발표한 행복 공식을 말한다. 공식에 따라 세계적 지표분석전문 사이트인 ‘비주얼 캐피탈리스트(Visual Capitalist)’는 매년 ‘전 세계 행복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행복지수’ 평가 항목은 건강 상태, 소득 수준, 주변 사람들과의 네트워크, 사회 지원망과 관대함, 개인 선택의 자유, 정부와 기업의 부패 수준, 인권 보장 등이다.

또 유엔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도 2012년부터 매년 ‘행복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SDSN의 평가 항목은 국가 국내총생산(GDP), 기대수명, 사회적지지, 자유, 부정부패, 관용 등 6개이다. 이를 토대로 행복지수를 10점 만점으로 산출해 순위를 매기고 있다.

매년 3월 20일은 ‘세계 행복의 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s)’이다. 이날 SDSN은 통산 3년치 자료를 합산해 그해의 행복지수를 발표한다.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행복지수 순위는 몇 번째일까. 조사 대상 149개국 가운데 2021년 행복지수는 62위이다. 중위권이다. 10위권의 국가 순위는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오스트리아로 유럽권 국가들이다.

행복지수 상위 국가 대부분이 예술강국이라는 점에서, 예술인들의 건강한 예술 생태계 구축을 지원하는 것은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고 외치는 우리의 정치·경제계 지도자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순위이다.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경쟁 상대라 할 수 있는 대만(19위), 일본(40위), 중국(52위)보다도 불행한 나라에 살고 있다. “돈만 잘 벌면 뭐 하나”, “졸부국가가 따로 있느냐”라는 비아냥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듯하다.

부끄러운 국가 행복지수에 비해 분야별 행복지수를 따진다면, 대중예술 분야만큼은 단연 세계 1위이다.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의 오스카상 수상, BTS(방탄소년단)의 미국 유명 대중음악상 수상, ‘오징어게임’으로 k-드라마의 위상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한국의 감독 스태프와 배우들. 이들은 수상식장에서, 리셉션 현장에서, 성공 소감이 담긴 미디어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행복합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한민국 예술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1위이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그들의 행복지수라고 할 수 있다면, 실제로 대한민국 예술인들의 행복지수는 높은 편이다. 지난 22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전국의 예술인 5596명이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예술인의 직업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경제적 이윤 창출의 경우 40점대라는 낮은 점수를 보였다.

이 조사에서 예술인들은 예술활동 및 예술의 가치에 대해서는 높은 자부심과 만족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보면 본인의 예술 활동에 대한 가치평가가 85.5점, 직업 만족도는 80.0점, 예술 활동 지속 의지는 88.9점이었다. 특히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는 92.6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매겼다.

하지만 본인의 예술 활동에 대한 경제적 이윤 창출은 40.3점, 예술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61.2점 등으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도, 이들이 예술인으로 살아가며 높은 행복지수를 나타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클래식작가이면서 바리톤인 채승기 교수는 지난 24일 포은아트홀 초청 예술인문학 특강에서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어느 직업인보다도 예술인만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직업인이 없다는 설명이다.

예술 관련 교육기관 첫 수업에서 선생님들은 초보 예술인에게 “왜 예술인이 되려고 하는가”라고 묻는다. 표현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답의 큰 줄기는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노래하고 연기하고 춤추고 연주하고, 작품을 발표하고, 런웨이를 걷는 등의 활동으로 자신이 행복하고, 이를 보고 듣고 감상하는 관객과 관람객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서이다.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예술만한 ‘묘약’은 없다. 행복지수 상위 국가 대부분이 예술강국이란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즘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을 행복한 나라로 만들겠다”라며 읍소를 하는데, 이는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

예술 진흥 없이 한 국가의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는다. 예술인들이 “건강한 예술 생태계를 만들어달라”며 정치권에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자”라는 이야기이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