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멋짐’도 ‘뿜뿜’도 없는 정치인의 악습… 가스라이팅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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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멋짐’도 ‘뿜뿜’도 없는 정치인의 악습… 가스라이팅
  • 입력 : 2021. 09.24(금) 17:34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대선을 앞두고 유력 주자들의 네거티브 전략과 적극 지지층들의 정치 참여 과정에서 가스라이팅의 모습이 엿보인다. 사진은 가스라이팅의 용어를 만든 미국 영화 ‘가스라이트’의 포스터다.
추석 연휴 동안 TV 뉴스의 화두는 ‘코로나19 명절 보내기’와 ‘대선 후보의 민심 살피기’이었다. 두 뉴스 모두 ‘살기 좋은 우리나라 만들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야기의 초점이 다르다면, ‘코로나19’의 어려움은 세계가 함께 겪는 문제이고, ‘대선 후보’의 움직임은 당면한 우리의 문제라는 점이다.

국민의 촉각이 코로나19를 포함한 국가의 난제를 현명하게 대처해줄 다음 정부의 수장에게 집중되는 건 당연하다. 여야 정당의 대표, 국무총리, 장관, 감사원장, 검찰총장, 국회의원을 지낸 이 나라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전국 곳곳을 방문해 민심을 살피고 있다. 국민의 촉각을 자기에게 모으는 주인공이 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열차역과 버스터미널에서 허리를 숙이고, 재래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손을 맞잡는다. 과거 정치지도자의 연고지를 찾아 자기 정치 색깔을 나타내고, 주요 표밭을 찾아 인연을 강조한다. 그때마다 “제가 이 고장의 자식입니다”라며 고향은 물론 아들, 딸, 사위에 며느리에, 사돈의 팔촌까지 들먹인다. 여전한 지역주의의 신봉자이며, 편 가르는 사람들이다.

한국은 좁은 사회이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고 한다. 흥미로운 조사 결과도 있다.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의 최근 조사 결과이다. 이 연구소의 ‘한국 사회의 연결망(네트워크) 조사’에 따르면 전혀 모르던 사이끼리라도 세 사람 또는 네 사람(정확하게 3.6명)만 거치면 다 알게 된다. 이처럼 네트워크가 촘촘한데 그들은 여전히 지역색을 강조한다.

미디어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경쟁을 ‘대선 레이스’라며 여론조사를 다투어 실시한다. 연휴 뒤에도 ‘추석 민심의 동향’이라며 마치 스포츠 중계를 하듯 나름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민심을 얻겠다며 후보들이 던지는 메시지에는 경쟁자에 대한 비방이 가득 담겨 있다. 네거티브 전략이 선을 넘고 있다. ‘덜 나쁜 사람’에게 표를 던져야 할 형국이다.

“왕따 없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선후배 사이에 다툼이 없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책이 가득한 도서관을 만들겠습니다”, “급식의 양과 질을 높이고 정수기를 더 많이 설치하도록 학교에 강력하게 요청하겠습니다” - 초등학교 어린이회장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 SNS에 올린 공약 일부이다.

서로를 비방하지 않는 후보들, 상대를 욕하지 않는 지지자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어린이회장 선거는 늘 한바탕 잔치 분위기다. “다른 후보 친구와 싸우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겠습니다”, “국회의원 아저씨들이 많이 싸운다는 걸 아는데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도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회장 선거보다 못한 대선 후보 경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최근 대선주자들의 비방전을 보면 어린이회장 선거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대를 깎아내리기보다 정정당당하게 정책으로 대결하는 모습을 국민은 원한다. / 뉴시스
정책 대결보다 경쟁자 깎아내리기에 열중하는 탓이다. 대선 후보들도, 모든 국민도 이 같은 ‘비난 전략’이 옳지 않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그런데도 광적인 지지자는 많아지고 더욱 끈끈하게 결집한다. 여야 가리지 않고 난타전이다. 그들의 흑역사가 드러나고, 가족의 사생활까지 뉴스에 등장한다. 그래도 그들은 멈출 줄 모른다. 몰염치 수준이다.

이왕 뽑은 칼이니, 두부라도 잘라야 한다는 심사인 듯하다. 안되면 동반 침몰이라도 할 기세다. 왜 이렇게 치킨게임을 벌이는 것일까 궁금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선거 관계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같은 네거티브 전략은 ‘정교한 선거 방식’의 하나이다. 이를 심리학자는 ‘가스라이팅’ 기법, ‘심리적 지배’라고 지적한다.

‘가스라이팅’은 정신적 학대(emotional abuse)의 한 유형으로, 1940년대 미국영화 ‘가스라이트Gaslight, 1940)’에서 시작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스등’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1944년에 제작된 잉그리드 버그만, 샤를 보와이에 주연, 조지 쿠커 감독의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작품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아내의 보석을 훔치기 위해 위장 결혼한 남편은 일부러 집안의 가스등을 희미하게 만든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내가 남편에게 “왜 이렇게 어둡죠?”라고 할 때마다 “그걸 어둡다고 느끼는 당신이 문제”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며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고 간다. 영화는 아내의 복종과 심리 조작을 보여준다.

밀접한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즉 상대적 ‘위력’을 가진 이가 상대적 약자에게 지속해서 전달하는 부정적인 ‘자기 의심’을 통해 심리적으로 나약한 상대적 약자는 그 상대적 강자를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 대부분 가정폭력이 이 ‘가스라이팅’의 구조를 갖는 것은 필연적이다. 종교에서의 광신자, 극우 극좌의 가름도 이와 유사하다. 언제부터인가 ‘가스라이팅’은 권력과 찰떡 관계를 유지한다.

누구나 ‘가스라이팅’의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강약의 차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당장 대선 주자들의 발언에서도 여기저기 희미하게 흔들거리는 가스등이 자주 보인다. 지난 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말자고 주장하는 부류에서도 보인다.

열성적인 지지자를 많이 확보한 후보가 “저 사람 나빠. 자, 다 같이 나와 함께 저 인간을 욕하자”고 하면 여러 사람이 동시에 우루루 몰려가 함께 욕하고 화내고 심지어 침 뱉고 오물을 투척한다. ‘가스라이팅’의 ‘위력’은 그렇게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네거티브 전략을 배척하고 경멸하는 이유이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젊은 세대 표현처럼 ‘멋짐멋짐’이거나, ‘뿜뿜’ 이미지가 가득한 어떤 후보가 내게 관심을 보이거나 손을 내밀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위력과 멋짐멋짐 뿜뿜이었던 후보가 어느 날 경쟁자를 향해 “저는 당신을 매우 좋아해요. 당신이 주장하는 그 정책도 너무 훌륭하고요”라는 메시지를 주면, 우리는 뛰는 가슴으로 “네네네!” 답하고, 동감하고, 감동하고, 또 동조하지 않을까.

상황과 설정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우리는 온오프의 세계에서 꽤, 자주, 누군가를 조정하고, 또 누군가에게 조정당한다. 때로는 “내가 너를 아끼니까” 혹은 “나는 정말로 너를 생각해서”라며 다가가고, 또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모두 그 누구도 ‘가스라이팅’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도, 설령 과거의 경력을 내세운 ‘위력’과 포장된 ‘멋짐 뿜뿜’으로 가득한 사람이 내게 근사한 미소를 건네며 다가오거나, 나를 아낀다며 큰 채찍을 들고 다가올지라도 내가 무너지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뿐이다. 바로 ‘내가 나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 ‘쪽팔리고 부끄럽고 슬프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뻔하고 지루한 결론이지만, 정말이지 유권자의 ‘자기 확신’이 필요한 때이다. 이것만이 뿌옇고 희미한 세상에서 어른거리는 ‘가스등’을 이겨내는 유일한 빛이다. 이제 후보는 물론 지지자들은 자기도 잘 모르는 누군가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면서, 경쟁자를 욕하고 침 뱉는 데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멈춰야 한다. 유권자 모두 자존감을 높이고 지혜로워져야 한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