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혐오 수준에 이른 젠더 갈등, 화해를 위한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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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혐오 수준에 이른 젠더 갈등, 화해를 위한 페미니즘
  • 입력 : 2021. 08.05(목) 21:27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일부 남성 커뮤니티에서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국가대표 선수인 안산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고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아 논란이 일었다. / 뉴시스
당연한 이야기에 꼭 트집을 잡아 삐딱하게 듣고 말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이야기이다.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자. 페미니즘은 ‘모든 성별(젠더)은 평등하다’는 이념으로, 페미니스트는 그런 이념을 지니고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며, 많은 사람이 인식하고 동의하는 내용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다’라는 페미니즘의 이념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단지 오랜 관습으로 여전히 작동하는 일부 남성중심주의 시각은 차츰 교정해나가면 된다. 또 사회의 몇몇 장애 요소를 젠더 갈등으로 몰아가는 접근법은 스스로 경계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민주 사회에서는 늘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이 있기 마련, 페미니즘이라서 다를까. 최근에도 페미니즘을 논쟁거리로 만든 사람들이 있다.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에 오른 안산 선수를 페미니스트로 공격하는 SNS 논란이 뜨겁더니, 야권의 한 대선주자는 국민의힘 초선의원 모임 초청 강연에서 “페미니즘이 저출산 원인의 하나”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SNS에서 안산 선수를 페미니스트로 꼽은 이유를 살펴보면 코미디에 가까운 지적도 있다. 바로 ‘짧은 머리’이다. 머리 스타일은 물론 남성이든 여성이든 ‘외모’ 지적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성이 매력인 시대다. 굳이 ‘짧은 머리’가 이유라면 대한민국의 현역 여성 스포츠인 대부분은 페미니스트다. 어느 정도 짧아야만 페미니스트인가를 묻고 싶다.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

저출산의 원인을 지적한 대선주자는 “말의 앞뒤 맥락을 살펴달라”고 했는데, 우리가 알기로 그에게는 2세가 없다. 결국, 저출산에 일조한 사람이 ‘페미니즘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니 앞뒤 맥락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정치권 일각이 “지난 4·7 선거 당시의 페미니즘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고 싶은 발언은 아닐는지” 의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시한 두 가지 논란은 모두 ‘불공평’을 지적한다. 생각의 다름을 이야기하지만 그 시점이나 화자의 지명도로 인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격에 상처를 주는 역기능으로 작용했다. SNS에서 벌어진 한국의 남녀 갈등은 외신을 타고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이슈로 확대됐다.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논란을 뿌리뽑기 위해선 남성중심적인 관혼상제부터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장례문화에서 여성도 주요 이사 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뉴시스

AFP통신은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자 최고의 기술 강국이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보도했다. 로라 비커 BBC 한국특파원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더러운 단어가 되어 버렸다”라고 썼다. 외신의 이런 지적에는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은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국가임을 자인하고 있다”라는 비아냥이 섞여 있다.

페미니즘 논란은 어쩌면 정답이 없는 시험문제일 수 있다. 고칠 수 있는 부분부터 하나씩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한국정책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한국의 뿌리 깊은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의 성차별부터 해소되어야 한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남녀 상속 차별이 없어지고, 호주 제도가 폐지됐듯이 남성중심적인 관혼상제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원의 최근 조사에서는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장례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돋보인다. 그 가운데에서 ‘여자 상주(喪主)’가 허용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 한국의 페미니즘 지수는 월등하게 높아질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장례문화에서 여성이 주요 의사 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제까지 남성은 상주나 주요 의사결정자 역할을 하는 데 반해, 여성은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명확한 불평등이다. 영정사진과 위패 들기, 상주 이후 제주의 역할까지 모두 남성의 몫이었다. 직계 자손이 없는 경우에는 방계의 남성이 그 몫을 수행했다.

반면 여성의 장례식 성 역할은 ‘조문객 맞이’가 전부였다. 이와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장례에서 여성은 음식을 준비하고 조문객을 대접해야 한다’라는 데 여성 응답자의 약 70%가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응답했다. 상주를 여성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사회 분위기가 이를 용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분명한 차별의 예다.

이 조사 분석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관혼상제 문화는 모든 절차와 의식이 남성 중심으로 이뤄지고 여성은 주변화되어 가부장제가 극대화됐다”라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성 평등 문화 수준과 동떨어져 있다”라고 지적한다. 결혼식 때 신랑은 혼자, 신부는 아버지와 함께 입장하는 사례도 엄연한 남성 중심 예식이라는 것이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사회 변화에 따라 가족의 모습과 구성이 다양해지고, 가족 문화와 가치도 많이 변화했으니 관혼상제에서부터 남성과 아들 중심의 형식적 경직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머리를 짧게 자르든, 비혼 1인 가구로 살든, 출산하든 말든, 타인에게 위해를 주지 않는 한, 자기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여성이 페미니스트이다.

우리는 젠더 갈등이 혐오의 수준에 이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혐오 표현은 SNS 시대에 더 빠르게 퍼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적인 언어와 범죄가 하위문화라는 허울을 쓰고 온라인에 떠돌고 있다. ‘소라넷’, ‘텔레그램 n번방’처럼 범죄가 아니라 유희 거리로 소비되는 오늘이다.

정치권에서도 페미니즘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구태를 이제 벗어야 한다. 구혜선 배우가 페미니스트 논란과 관련해 SNS에 올린 “나는 남성과 여성에게서 태어난 여성이다. 또한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이다”라는 글귀는 새겨둘 만하다. 남성과 여성이 그렇게 하나가 되어 세상을 이끌어오지 않았는가. 남성과 여성은 ‘비익조’이고 ‘연리지’이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