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몸 좋고 힘만 센 헤라클레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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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몸 좋고 힘만 센 헤라클레스의 전쟁
  • 입력 : 2021. 07.26(월) 10:43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헤라클레스의 대표적인 힘 자랑은 여당 후보들이 보여주는 난타전과 비교될 만하다. 특히 후보들 간 민주당 적통 경쟁은 궁색해보이기까지 한다. / 뉴시스
대선 출마 선언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줄잡아 20여명. 국민은 ‘대통령감’이 많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 관리가 힘들다. 옛말을 빌자면, “난세에 영웅이 난다”라며 반기는가 하면,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노릇 한다”며 비아냥거리는 반응도 있다. 늘 그랬듯, 후보들 간 낯 뜨거운 비방전이 한창이다. 이른바 ‘헤라클레스의 전쟁’이다.

‘초인간적 영웅’이라는 수식어로 압축되는 헤라클레스(Hercule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다.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한 남성의 이상을 두루 갖춘 인물이다. 강력한 체력은 무심히 휘두른 팔뚝에 맞은 사람은 즉사할 정도였고, 어떠한 싸움에서나 패배를 몰랐다. 활쏘기와 걷기는 물론 의술에도 능했고, 음악에도 뛰어났다.

이쯤 보면 헤라클레스는 육체의 건강과 함께 모든 교양과 인격을 갖춘 멋있는 신사다. 하지만 신화를 털어 봐도 그는 본인의 힘을 과시용으로, 또 자신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데에만 사용했지 주위 사람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혼자 잘난 체만 하고 남을 위해 그 무엇도 하지 않았던, 그래서 영웅이 될 수 없는 인물이다.

요즘 대한민국의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군을 살펴보면 헤라클레스 같이 힘만 센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미디어에 노출된 그들의 언행을 보면 그렇다. 대통령 권한 대행을 지낸 사람, 대한민국 권력 서열 2위인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 이 나라 사정 기관의 총수를 지낸 사람, 도지사도 있고, 여야의 당 대표를 지낸 사람 등등 모두 헤라클레스급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힘’을 국민을 위해 써야 마땅한 자리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헤라클레스들끼리 물고 뜯는 야단법석으로 온 나라가 소란하다. 정치적 중립을 생명으로 한 사정 기관 총수들은 옷을 벗자마자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자기모순에 빠진다. 주 120시간 노동이라는 해괴한 셈법을 내놓고, ‘기본소득’을 용돈 취급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 이미 법적 판단이 끝난 경쟁자의 스캔들을 TV토론에서 공론화시키려 애쓰고, 당사자는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응수한다. 오래전에 회자한 연예인의 저질 발언으로 설전을 벌이는 노이즈마케팅이다. 또 다른 국무총리는 기회마다 “내가 적자요 적통이다”라고 힘을 준다.

야당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정치적 중립을 생명으로 한 사정기관의 총수들이 옷을 벗자마자 정치권에 뛰어들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활동 중이다. / 뉴시스

모두 알다시피 적자(嫡子)는 ‘정실(正室)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이고, 적통(嫡統)은 ‘정실에게서 난 자식의 계통’을 이른다. 이들 용어는 과거 봉건시대에나 쓰던 것으로 사문화된 지 오래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임금이나 왕의 자리가 아니거늘 무엇 때문에 이 용어를 그렇게 사랑하는 것일까. 나머지 후보는 서자(庶子)이며, 서통(庶統)으로 보는 비하 발언이다.

대부분의 여당 후보들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계열의 적자 적통 주장으로 더 힘을 얻겠다는 계산인 모양인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처지를 놓고 또 다른 설전이 한창이다. 이 또한 꼴불견이다. 탄핵 반대이면 적자이고, 찬성했으면 서자라는 단순 논리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반 논쟁도 야당에서 다시 불붙을 것인지도 궁금하다.

현재의 정치 지형도에서 노무현의 정신을 배제한 민주 진보 진영은 존재하기 힘들다. 게다가 임기가 얼마 안 남았지만, 보수 진영의 공격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50%를 넘나드는 현실이어서 ‘적통’ 이슈를 들고 나오려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반으로 잣대 삼는 방법 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참으로 궁색한 헤라클레스들이다.

그 당시 민주 진보 진영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성 반대를 떠나 몇몇 사람이 어물쩍거렸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 노무현 정신을, 또 적자 적통 계승을 외치는 것은 소모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 주장에는 “그때 삭발하고 울부짖고 들것에 실려 나가고 했던 사람들에 대해 미안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라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헤라클레스의 대표적인 힘 자랑은 여당 후보들이 보여주는 난타전이다. 그들이 펼치는 상호 비방은 한마디로 ‘꼴불견’ 수준이다. SNS상에도 이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크다. 여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건전한 선거 풍토를 열망하는 많은 국민은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정치 현안을 무대에서 형상화하는 연극 제작자 이종일 대표는 SNS에서 이렇게 안타까움을 전했다.

“6명의 형제가 푸드코트를 얻어서 식당 오픈을 준비 중이다. 각자 한 구역씩 자리를 잡고 자신들이 준비한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홍보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 서로 자신의 장점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옆 코너의 단점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그냥 우리 식당은 신선한 재료와 깔끔한 주방, 친절한 서비스 등이 장점이라고 홍보하면 되는데 옆집은 서비스가 안 좋다, 그 옆집은 중국산 식자재를 쓴다, 건물주랑 사이가 좋네 안 좋네 하며 형제끼리 물어뜯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 손님 입장에서 그 푸드코트에서 음식을 먹고 싶겠는가? 지난번 서울식당 오픈 때를 잊었는가? 남은 기간만이라도 본인 음식 홍보들만 했으면 한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이종일 대표의 지적처럼 여당 후보들의 상대방 흠집내기는 “같이 망하자”라는 물귀신 전략일 뿐이다. 야당은 다를까. 후보군이 확정되면, 여당 뺨치는 야당 후보까기의 흠집내기가 본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결국 국민은 여야를 막론하고 몸 좋고 힘만 센 ‘미스터 헤라클레스 선발대회’를 지켜보아야 한다.

톨스토이가 일찍이 “모든 권력은 인간을 부패시킨다”고 경고했듯이, 우리나라의 정치사를 살펴보면 대통령을 비롯해 대부분의 정치권력이 부패하지 않았을 때는 없는 듯하다. ‘정치권력’이라는 ‘힘’만을 지닌 헤라클레스들이 이 나라를 대표하면서 국민을 불안 속에 몰아넣었다. 그래서 대선 때만 되면 국민의 행복을 우선하는 지도자를 기다리고는 했다.

국민은 끊임없이 ‘정치 선진화’를 요구해왔다. 정치권력의 변화를 기대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에게 의석을 몰아주었을 때, 최근에 30대 정치 지도자가 제1 야당의 당 대표로 선출되었을 때, 국민은 정치권력이 변화를 보여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때뿐, 가슴 없는 헤라클레스들이 저마다 국가와 국민을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서로를 헐뜯기 바쁘다.

대권에 도전하는 후보들은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말로를 다시 한 번 살펴보기를 바란다. 헤라클레스는 아내를 배신하고, 그 아내의 복수로 결국은 장작더미 위에 누워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 스스로 목숨을 던진다. 아내로 대표되는 약자를 배신한 헤라클레스의 교훈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신화 이야기라고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의 합리주의 사고로써 논리화시키기에는 무리한 문제점이 허다하지만, 신화 그 자체가 지닌 인간의 모든 조건은 현대인에게 예지와 교양을 주는 알맹이들이다. 신화가 문장이나 담화에 곧잘 인용되는 것도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권 도전에 나선 우리들의 헤라클레스들이 부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멋진 신사이기를 기대해본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