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의 무한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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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의 무한변신
  • 입력 : 2021. 06.28(월) 18:07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유일한 국악 방송 프로그램인 ‘국악한마당’이 콘텐츠에 변화를 줘 국악의 전통성 계승과 함께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 / KBS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오래전 배일호 가수의 ‘신토불이(1992년, 작사 김동찬, 작곡 박현진)’란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 박동진·노명창이 CF 광고에 나와서 한 대사이다. 노래만큼이나 이 광고 문구는 현재까지도 여러 분야에서 환영받으며 응용되고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원래 뜻은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이므로 같은 땅에서 산출된 것이라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의보감’의 ‘약식동원론’(藥食同源論)에서 나온 말이다. 노래 유행에 착안해 농수산 관계기관에서 캠페인 용어로 사용하여 더욱 유행하였다. 이후 모든 상품의 국산품애용 차원에서 즐겨 쓰는 용어가 됐다.

전통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신토불이’는 사랑받는 용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란 포괄적 의미를 품고 있어서다. 특히 국악계에서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앞 또는 뒤에 ‘얼쑤’란 추임새를 붙여 공연 제목으로 자주 쓴다. 이들 공연의 공통된 특징은 “국악이 ‘신토불이’하려면 전통을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덧입혀야 한다”이다.

국악계의 ‘신토불이’를 위한 ‘얼쑤’ 작업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트로트 오디션에 출전해 입상한 국악 전공자가 여럿이다. 8시즌까지 마친 Mnet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는 문화재 전수자급의 국악인이 출연해 놀라운 예능감을 보인다. 이들의 출연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톱100에 랭크될 만큼 대중적 호응도 크다.

국악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맥락 중 하나는 ‘산조’다. 산조가 요즘은 무용에 협업되면서 전통무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 국립무용단
방송의 유일한 국악 프로그램인 KBS1 ‘국악한마당’의 변화는 더욱 놀랍다. 1990년부터 오늘까지 국악의 전통성을 계승하며 시대의 흐름(변화)을 담아내는 국내 최장수 국악 전문 프로그램답다. 전통 소리꾼과 고수, 국악기에 의한 독주 또는 합주, 한국무용 등 그렇게 진행되던 프로그램의 콘텐츠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난주 방송이 좋은 예이다.

첫 무대부터 파격의 연속이다. 클래식기타 선율에 실어 장서윤이 김소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창작국악가요 ‘실버들’을 불렀다. 클래식기타 연주자와 신민요 가수의 만남이다. 민요에 반드시 수반되는 고수가 제외된 새로운 시도였다. 이를 해설자는 ‘신민요’라 했다. 지난 2003년 여성 로커 마야가 김소월 시 ‘진달래꽃’을 새롭게 해석했던 때에 비유되는 영상이다.

‘국악한마당’의 다른 예술과의 협업 시도는 여전히 이채롭다. 장서윤이 국악 무대에 문학을 초대했다면 뒤이어 등장한 연주자들은 미술을 바탕으로 한 신곡을 들려주었다. 문세미의 가야금과 이선진의 거문고 합주는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의 작품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동명으로 연주했다. 그들의 연주 모습은 마치 래퍼들의 랩 배틀을 연상하게 한다.

요즘 국악인들의 공연에는 우리 전통악기만큼이나 서양 악기가 자주 등장한다. 전통음악을 연주할 때 장구나 소리북으로 장단을 치는 고수(북제비) 대신에 드럼 세트를 갖춘 드럼 연주자가 역할을 대신하고 전자기타나 디지털피아노가 리듬을 왕왕 이끌어간다. 전통 관악기인 피리 대신에 클라리넷이나 플롯이 쓰이기도 한다.

산조는 정통과 즉흥이 교차하는 특징 때문에 서양의 재즈에 비견되기도 한다. / 국립무용단
최근의 국악 무대가 보여주는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공연 의상의 변화이다. 소리꾼이든 연주자이든 국악 무대 출연자 의상은 전통 한복이어야 했다. 요즘은 다르다. 한국무용의 춤꾼을 제외하고는 전통 한복을 보기 어렵다. 출연자 대부분이 일반인과 다름없는 평상복 차림이다. 지난 ‘국악한마당’에서도 진행자인 정은송 아나운서의 한복만이 돋보였을 뿐이다.

이 변화에 대해 ‘국악한마당’에 출연한 ‘서의철 가단’은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말한다. ‘온고지신’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안다’이고, ‘법고창신’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라는 의미이다. 국악인들의 변화가 “전통음악을 제대로 익히는 한편 대중들에게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다”라는 설명이다.

국악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맥락 중 하나는 산조(散調)이다. 산조는 토속민요, 상여소리, 수제천, 동동 등과 함께 우리 전통음악의 기둥 역할을 한다. 일반인도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가야금산조,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아쟁산조, 피리산조 같은 바로 그 산조이다. 시나위와 판소리의 가락을 일정한 리듬의 틀에 넣어 연주하는 즉흥성을 띤 음악이다.

‘산조’는 느린 속도의 진양조로 시작하여 차차 빠른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바뀌어 끝난다. 기악합주곡에 쓰였는데, 이 산조가 요즘은 무용에 협업되면서 ‘산조춤’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전통무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국악한마당’에서 대한민국전통무용협동조합 김진원 이사장이 공연한 ‘한량무’를 새롭게 풀어낸 ‘춘설지몽’이 그렇다.

한국무용에서의 ‘산조’는 국립무용단의 중요한 콘텐츠로 운용될 정도이다. “대한민국 무용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고 자부하는 국립무용단은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산조’를 창작의 원천 삼아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라고 발표했다. 그 결과물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6월 24~26일)에서 공개된 바 있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다양한 장단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선율을 만드는 ‘산조’는 수련을 통해 경지에 이른 연주자가 자신의 개성과 즉흥성을 전통 위에 얹어 대중에게 들려주는 음악이다. 정통과 즉흥이 교차하는 특징 때문에 서양의 재즈에 비견되기도 한다. 국립극장 ‘산조춤’ 공연 제목은 ‘흩어짐과 모임의 미학 – 국립무용단 산조’이다.

국립무용단의 공연에 대해 국악인들은 “한국무용으로 평생을 수련한 국립무용단 무용수의 몸이 무대 위에서 산조의 음악을 만나 어떤 자유로운 흐름과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며 기대하고 있다. ‘국악한마당’에서 김소월의 시와 이중섭의 그림이 소리꾼과 연주자들에 의해 재해석되듯이 국립무용단은 ‘음악 같은 무용, 무용 같은 음악’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BTS로 귀결되는 K-POP의 세계화에는 한국 전통문화도 일정 부분 거들었다. 한국 아이돌그룹의 빌보드 석권은 음악적 우수성이 바탕이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그룹 안무, 이른바 춤사위가 한몫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적인 커버댄스 열풍이 이를 입증한다. ‘산조’를 통한 한국무용의 새로운 춤사위가 세계 무용계에서 우뚝 서는 날도 멀지 않았다.

트로트 오디션에서 보여준 국악 소리꾼들의 신트로트, 클래식 음악 오디션과 뮤지컬에 도전하는 소리꾼들, 국악인 김애리와 비보이 팝핀현준 부부의 협업 작품들, 대중가요와 K-POP을 국악으로 소화해 세계에 알리는 수많은 유튜버, 그리고 남상일 등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는 국악인들, 이들의 온고지신, 법고창신의 예술혼이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인 셈이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