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역사 새로 쓰고 바로 쓰고, 주목받는 시민사학(市民史學)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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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역사 새로 쓰고 바로 쓰고, 주목받는 시민사학(市民史學)
  • 입력 : 2021. 05.21(금) 13:19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의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40년이 넘도록 원흉을 밝혀내지 못해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 뉴시스
2021년 5월 18일. 올해도 그날이 왔지만 달라진 건 없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식이 그랬다. ‘올바른 역사 세우기’를 다시 생각했을 뿐이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모두 참가해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라며 죄다 머리를 조아렸지만, 그들 정치인에게서 ‘위선’을 읽었을 뿐이다. 아직도 수많은 민주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원흉’을 밝혀내지 못한 그들이다.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그들은 역사를 바로 쓰지 않고 있다.

오늘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버젓이 미디어에 등장해 핏대줄을 세우는 현실이다. 그에 동조해 불과 2년 전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주최해 태극기를 흔들어댄 그들이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40여년 전 현대사의 기록이 이럴진대 그동안 기록된 고대사를 비롯한 우리의 역사 기록을 어찌 바로 읽을 것인가.

지난달 여러 명의 국회의원이 누리꾼들에게 혼쭐이 났다. 여당 소속 12명의 국회의원이 ‘교육기본법’에서 ‘홍익인간’ 이념을 빼고 그 자리를 ‘민주주의’로 대체하자는 내용의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을 “일부 정치집단의 잘못된 역사 인식의 산물”이라며 많은 누리꾼이 SNS 등을 통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역사에 관심 있는 국민과 재야의 사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올해 5·18을 앞두고 방송에선 KBS2 월화 드라마 ‘오월의 청춘’, 영화에선 ‘아들의 이름으로’, 뮤지컬에선 ‘광주’가 시민사학의 역할을 했다. / 스틸 컷

법 개정안 발의 후 엄청난 후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며칠 만에 개정안 발의는 ‘없던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여파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역사학계의 ‘침묵’은 실망스럽다. ‘홍익인간’ 이념을 ‘교육기본법’에서 삭제하자는 데도 침묵으로 일관한, 우리 고대사를 지켜야 할 한국고대사학회와 역사 관련 기관들, 특히 강단사학자들의 침묵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민사학(市民史學)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이다.

‘시민사학’ 시대를 지지하고,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정치와 정치인을 국민이 믿지 못하고 오히려 걱정하는 것처럼 우리 역사도 역사학자와 정치인들만 믿고 맡겨둘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김해 여여정사 주지 도명스님은 “이제는 종교나 진리가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고, 정치도 정치인만이 독점할 수 없으며, 역사 또한 역사학자만이 학문을 권위화하고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라며 ‘시민사학시대’의 정당성 확보를 역설하고 있다.

시민사학 시대를 이끄는 시민사학자(역사에 관심을 가진 일반 시민)의 등장은 신선하고 듬직하다.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유튜브나 온라인을 통해 일반인도 장외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더라도 1차 사료 등의 문헌을 직접 열람할 수 있는 시민사학 시대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문인, 예술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시민사학자들의 기성 역사학계에 대한 불신의 골은 아주 깊다.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동북공정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이 최근 들어 김치에 한복까지 들먹이며 원조 논쟁을 촉발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외교적으로 미묘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미적거리고 있다지만 역사학계의 ‘모르쇠’ 반응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여기에 얼마 전 하버드대 마크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왜곡 논문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웠을 때도 우리나라 역사 관련 국가기관과 역사학계가 끝까지 침묵하자, 시민사학자들의 역사학계에 대한 불신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지극히 당연하다.

김태영 감독의 영화 ‘황무지 : 5월의 고해’는 5·18을 다룬 첫 영화다. 1989년 발표 당시엔 군사정부로부터 상영불가 통보를 받았다. 지난해 전국에서 특별상영됐다. / 스틸 컷
시민사학자들은 “중국 일본과 벌이는 역사 전쟁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내부 수구세력의 역사관을 바꾸는 일이 더 시급하다”라고 보고 있다. 우리 국토와 국민,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지켜야 할 정치인들이 우리 역사도 모르고 자기 시조도 모르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조차 외면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역사학자들의 침묵이 더 두렵다면 이제는 시민이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시민사학 시대’의 선두는 언제나 대중예술인의 몫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역사 바로 세우기(진실규명)에도 그들은 앞줄이 섰다. 80년대부터 다큐멘터리를 내놓은 방송PD 출신의 김태영 감독은 1989년 ‘황무지 : 5월의 고해’를 발표한다. 5·18을 다룬 첫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당시 군사정부로부터 상영불가 통보를 받았고, 감독은 숱한 고초를 겪었다. 그는 가난과 싸워야 했고, 급기야 몸까지 망가졌다. 그렇게 김태영 감독과 영화 ‘황무지 : 5월의 고해’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흐려져 갔다. 그는 5·18의 기록을 제대로 담아낸 ‘시민사학자’이다.

이후 ‘꽃잎’,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를 비롯해 ‘26년’, ‘택시운전사’, ‘김군’ 등 그날을 기억하고자 하는 미디어 속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는 영화를 넘어 TV 드라마, 예능, 무대 등 수많은 대중문화로 이어졌다. 대중문화는 단순히 그날의 참상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다양한 배경과 설정 속에 5·18을 녹이고 있다. 그렇게 ‘원흉’의 ‘가면 벗기기’에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

그렇다면 2021년 오늘의 대중문화 속 5·18은 어떨까. 각 부문을 대표할 수 있는 진지한 작품이 3편이 대중을 만났다. 방송에선 KBS2 월화 드라마 ‘오월의 청춘(연출 송만엽)’, 영화에선 ‘아들의 이름으로(감독 이정국)’, 뮤지컬에선 ‘광주(연출 고선웅)’가 ‘시민사학’ 시대를 같이 했다.

드라마 ‘오월의 청춘’은 5·18 민주항쟁 속 매 순간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던 당시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를,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잊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가해자의 오늘을, 뮤지컬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 강경 진압의 빌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시민군에 침투시킨 ‘편의대’ 대원의 통렬한 자기반성을 기둥줄거리로 하고 있다. 저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창작’이란 수단을 통해 합리적 결과를 도출한다는 측변에서 ‘시민사학’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시민사학’을 이끄는 도담 스님은 자신의 SNS에 이렇게 썼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이 나에게 물었다. 스님 이번 선거(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며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왔다. 내가 답하길 ‘역사를 모르는 게 원인이고 그 답은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고승과 나누는 선문답 (스님은 동문서답이라고 했다) 같지만, 알고 보면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환경을 잘 알 때 과거를 통하여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와 방법을 소환할 수 있다. 또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바른 인과를 학습하고 정의와 선(善)에 대한 바른 가치관도 형성되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학 시대에 동참한 사람들의 ‘역사관’이다.

역사를 새로 쓰고, 다시 써가며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선 ‘시민사학자’들. 그들의 끊임없는 도전에 지지를 보내면서 미술사가 E.H 곰브리치의 명쾌한 지적을 덧붙인다. 곰브리치는 그의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역사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새로 발견되어 과거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을 새로운 사실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지금 이 시대 올바른 역사가 ‘시민사학’에 의해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