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4월은 여전히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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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4월은 여전히 잔인하다
  • 입력 : 2021. 04.13(화) 17:12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선거 때마다 투표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이 많아졌다. 세상을 바꾸는 데 한 표를 행사하더라도 결과는 늘 차악이 아니라 최악이기 때문이다. / 뉴시스
4·7 재보궐선거가 끝난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주류 언론은 “후폭풍이 거세다”라는 제목의 후속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후폭풍’은 선거 때마다 듣는 소리다. ‘폭풍’은 ‘몹시 세차게 부는 바람’을 이른다. 폭풍의 계절이 되면 ‘강풍경보’가 발령된다. 몸을 다치거나 재산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다. 하지만 국민은 정치권과 언론이 쏟아내는 ‘후폭풍’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귀담아듣지도 않는다. 폭풍은커녕 ‘미풍’으로도 체감하지 않는다. 그들의 강풍경보에 너무 많이 속아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들은 싫증이 난 레퍼토리를 들고 나왔다. 진 쪽은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이고, 이긴 쪽은 “우리가 아니라 국민의 승리이다”라고, 한쪽은 “미안하다”라고, 한쪽은 “고맙다”라고 절을 한다. ‘엎드려 절 받는 꼴’이다. 이전 선거에서 그랬고, 그 오래 전 선거에서도 그들의 레퍼토리는 글자 하나 다르지 않다. 상황이 바뀌어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똑같다. “잘못했다”라며, 아스팔트 위에서 삼보일배로 회개하고, “용서해달라”며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이마를 조아렸지만, 이제 국민은 이 같은 퍼포먼스가 ‘쇼’인 걸 안다.

‘양두구육’의 ‘쇼’를 통해 국회의원이 되고, 고위 공직에 오른 사람들, 그들의 ‘쇼’를 연출하고, 스태프로 참여해 떡고물을 챙긴 사람들, 그들의 낯 두꺼움에 소름이 돋는다. 지난 11일 방영된 MBC ‘스트레이트’ 보도가 사실이라면, 어느 영화의 줄인 제목 ‘놈, 놈, 놈’이 저절로 나온다. 한두 사람이 아니다. 보도대로, 직위를 이용한 사전 정보로, 이해충돌 방지법을 피해가며 ‘부자’가 됐다면 그들은 나라와 국민을 속여 재산을 불린, 일제 강점기 배신자와 다름없다. 그들을 위해 우리가 선거에서 ‘소중한 한 표’를 던졌던가, 하는 자조의 한탄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그들이라고 부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부분 사람은 부자를 싫어하면서도 부자가 되고 싶은 모순된 감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돈에 관한 정반대의 감정을 갖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돈에 관한 애증(money ambivalence)’이라고 말한다. 명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돈은 비도덕적(톨스토이)”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지갑이 가벼우면 마음이 무거운(괴테)” 것이 현실이다. 돈을 대하는 이 두 마음의 갈등으로 사람들은 고민 속에 빠진다. 두 개의 감정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닫기 때문에 대개는 소유하지 못한 것에 심리적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보통 둘 중 편안한 쪽으로 생각하고 그 믿음을 강화하려 든다. 이런 심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포퓰리즘, 대중영합주의이다. ​이러한 정신적, 심리적 노력을 심리학적으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일컫는다. ‘인지부조화’는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 일관되지 않고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는 상태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바로 그 상태다. 음악인문학자인 채승기 교수는 “정확히는 ‘인지부조화’인 척하는 것이 맞다. 그들은 국민 모르게 뒤에서 부를 축적하니까. 진정으로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는 것은 많은 국민이다”라고 지적한다.

권력자들의 부동산 의혹을 포함한 위선적 행태를 보면 경제적 민주화는 요원하다. 이제 국민의 기대는 정치적 민주화에 모인다. / 뉴시스
자신의 재무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때문에 나의 '신념'을 바꾸는 것이 훨씬 편하고 불안감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대중은 부자를 싫어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고, 정치인들은 사회 분위기를 그렇게 조장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사람들의 의견이 한쪽으로 기우는 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통합’을 외치지만 ‘분열’을 꾸준히 주문한다. 기업경영인 출신의 한 중견 정치인은 사석에서 필자에게 “국민이 서로 피 터지게 싸워야 정치할 맛 나거든. 그게 우리들 놀이터니까”라고 전했다.

취중발언이지만, 그는 솔직했다. 국민이 화합하는 순간 국회는 말 그대로 국민의 심복이 될 테고, 언론은 가십거리나 자극적으로 다루는 옐로저널리즘으로 도배된 하이에나들의 거주지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런 날(통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어쨌든 이 사회는 부자에 관한 부정적인 자료를 먼저 찾고 이를 근거 삼아 사람들이 확신을 하게 만든다. 일종의 세뇌 과정이다. 그래야 대중들은 각자 자신에 대한 기분도 나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 때마다 투표에 진저리치는 사람이 많아졌다. “세상을 바꾸자”는데, 바뀌는 게 없다. 국민은 그들의 주문대로 고분고분 투표에 참여하는데, 정작 그들은 그대로이다. 그래도 미안한 맘은 있는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달라”고 목소리를 낮추지만, 결과는 늘 ‘차악’이 아니라 ‘최악’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들이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억지 흠잡기의 정당화’의 산물이다.

애초에 상대방의 흠을 물고 넘어져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인권적인 권위주의의 발상이다. 따라서 이 발상은 “저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 앞에서 사실과 관계없이 무조건 ‘유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할 근거로 삼기 딱 좋은 발상이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했을 때 반성은커녕 “너는 잘못 안 하고 산 줄 아냐”는 식의 적반하장이 판치는 나라다. 혈세 털어 가며 일하라고 뽑아 준 이들의 행태다. 이러하니 투표할 맛이 날까. 국민의 선거 포기 현상이 짙어지면 이는 곧 민주주의의 붕괴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있어 4월은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처럼 ‘잔인한 달’이다. 4월은 한국인이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난 달이다. 1960년 4월 19일은 193명의 사망자와 6259명의 부상자가 일궈낸 4·19 민주 혁명일이고, 2014년 4월 16일은 304명의 사망실종자를 바다에 묻은 세월호 침몰 및 구조방기 사태를 일으킨 끔찍스러운 날이다. 이 두 가지 사건 때문에 한국사회의 속살은 투명하게 드러났다. 민주주의를 위해 국민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가를,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국민 보호’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을 훼손시켰는가를 입증하고 있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고 통제하는 정치인이 아니었느냐는 질문을 이번 4월에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투표에 진저리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밑에 괴어 놓은 기반이 파괴돼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국민이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하는 데 얼마나 더 한 세월이, 희생이 필요한 것인가. 드라마 ‘팬트하우스’에서 사는 듯한 그들이 “이제 국민의 뜻을 받들어 공복(公僕)의 역할에 이 한 몸을 바칠 터이니 우리를 믿고 기다려주고, 국민 여러분은 생업에 충실하기 바란다”라는 식의 말은 곧,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을 멈추라는 말과 같다.

평범한 국민이 평생 모아도 내 집 마련할 수 없는 나라, 그 집값 좀 잡아달라고 정치를 맡겼더니 생선가게 고양이처럼 온갖 불법으로 ‘부자’ 행세를 하는 정치인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정치 권력이 국민을 통제하고 군림하고 우롱한 4월이다. 한국의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정치 권력과 재벌 패밀리에 의해 완전히 장악돼 거의 되돌릴 생각조차 못 할 수준이라는 게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산업과 일자리와 부를 장악하면 그게 곧 행정, 사법 시스템조차 위성화 해서 복무시키는 결과를 낳는 현실이다.

한국사회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의해 장악돼있고, 그들이 핏줄을 통해 대대손손 금수저 권력을 세습한다. 권력자들의 ‘부동산 의혹’을 포함한 ‘위선적 행태’를 보면 경제적 민주화는 요원하다. 이제 국민의 기대는 정치적 민주화에 모인다. 4월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결코 국가권력도 경제 권력도 사유화시키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야구도 보면 늘 위기 뒤에 기회가 오고 찬스 후에 위기가 온다. 어떤 반성도 늦지 않고 어떤 혁신도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을 생각게 하는 4월이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