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을 걱정하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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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을 걱정하는, 돈이 지배하는 세상
  • 입력 : 2021. 03.18(목) 10:39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세계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존재는 돈”이라고 말했다. 우리 선조들 역시 돈을 인성을 해치는 ‘더러운 존재’로 멀리했다고 최정철 전 한국영상대 교수가 밝혔다. / 뉴시스
“돈이 웬수(원수)여!”, “돈! 먹고 죽으려도 없다”- 오래전부터 없는 사람들이 탄식 삼아 내뱉던 말이다. 이 탄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돈이 원수 같은 서민은 물론 죽어서 돈을 싸짊어지고 가려는 ‘있는 사람’도 돈에 대한 애착은 마찬가지이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교양도 지성도, 예의범절도, 함께 사는 세상도 ‘돈’ 앞에서는 쓸모가 없다.

‘부익부, 빈익빈(富益富貧益貧)’. 세상은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욱 가난하게 되는 시대다. 현대 사회에서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소득 차가 점점 벌어져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그의 저서 ‘경제학의 향연’에서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존재는 돈이다. 그 돈을 두고 사람들은 목숨을 건다”라고 말한다. 부자들은 손톱만 한 이득이 보이면 여기에 목숨을 걸고, 빈자는 목숨을 걸고 돈을 좇는다. 그 ‘더러운 돈’을 두고 말이다.

예의범절을 ‘목숨’보다 더 한 가치로 여겼던 우리 조상들은 ‘돈’을 어찌 보았을까. 최정철 전 한국영상대 교수는 그의 칼럼 ‘엽전과 비트코인’에서 “우리 선조들은 ‘돈’을 인성을 해치는 ‘더러운 존재’로 멀리했다”라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조선시대 불렸던 ‘돈타령’을 예로 들었다.

‘돈타령’의 가사에는 여러 종류의 돈이 등장한다. ‘개성 장사치 발 구린 돈’이 먼저 소개된다. 개성상인들은 장사 길 돌아다닐 때 도적들 무서워 돈을 버선발 밑에 깔고 다녔기에 돈에서 구린 냄새가 난다고 했다. 고생고생하면서 번 돈이라는 뜻이다.

한말에 독립협회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윤효정은 그의 문집에 한말 벼슬아치들의 ‘마다리’라는 비자금 모금 수법을 적었다. ‘평안감사 마다리 돈’이다. 평양감사는 고위 관료 중 누구나 탐내던 지방 관찰사 자리이다. 감사로 부임하자마자 이자들이 벌인 짓 중 하나가 지역 토호들 불러놓고 벼슬자리를 주면서 벼슬 값을 내놓으라고 욱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재력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벼슬값을 부르게 마련이다. 결국은 그 벼슬을 받지 않는 대가로 벼슬값의 절반이나 3분의 1을 내놓아야 했다. “벼슬일랑은 사양하겠으니 대신 그저 정성으로 여기시고 이 돈을 받으시라”며 별도의 돈을 바쳤다. 벼슬을 ‘마다’하면서 내는 돈이라고 해서 ‘마다리 돈’, 그렇게 부른 것이다. 억울하게 뜯기는 돈의 대명사다.

현대에 와서도 ‘마다리 돈’은 존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공판정에서 이 변형 ‘마다리’수법을 썼음을 고백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는 재벌들이 관행상 은밀한 정치자금을 내게 돼 있었다. 1996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공판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기업인들이 불안해서 잠도 못 자고 투자 의욕도 사라졌으며 해외 도피까지 생각하고 있어 우국적인 차원에서 돈을 받았다”라고 했다. 변명치고는 치졸의 극치다.

돈은 곧 재물의 집약체다. 옛말에 이르기를 재(財)가 재(嶺)를 넘으면 재(災)가 된다고 했다. 재물이 넘지 말아야 할 고개를 넘으면 그 재물은 재앙이 된다는 얘기다. / 뉴시스

그 어떤 방식으로든지 관권의 비호를 받거나 이권을 노리거나 수탈을 막아야 할 부자들은 항상 불안하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관가의 횡포에 떠느니 마다리를 내는 방책을 찾게 되고, ‘마다’ 마시고 수납하게 하는 게 변형 ‘마다리’다. 달리 표현할 것 없이 ‘뇌물’이다. 후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도 ‘마다리 돈’을 받아 죄값을 치르고 있다.

재물을 베풀어 공덕을 쌓는 일을 불교에서는 보시(布施)라 하여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보시에는 겉은 보시의 탈을 쓰고 속마음은 다른 사이비 보시가 있다. 불경 ‘구사론(俱舍論)’의 칠불보시(七不布施)가 그것이다.

칠불보시는 수지시(隨至施)-집요하게 요구하므로 거절할 수 없어 바치는 보시, 포외시(怖畏施)-하지 않으면 신상에 불이익이 올 것 같아 불안해서 바치는 보시, 보은시(報恩施)-옛날에 덕본 것을 갚기 위한 보시, 구보시(求報施)-어떤 대가를 기대하는 보시, 습선시(習先施)-전부터 관례가 돼 있고 남들이 하기에 나도 하는 보시, 희천시(希天施)-그로써 잘 보여 득을 보려는 보시, 요명시(要名施)-자신의 명성을 과시하기 위해 하는 보시 등을 말한다.

기업인으로 19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내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극단적 선택을 한 성완종 회장.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있는 정치인들도 하나같이 성완종의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모르쇠가 됐다. “길에서 새끼 토막 하나 주워 집에 돌아왔더니 황소 한 마리가 따라 들어왔다”라는 소도둑의 변명도 그것이다.

이슬람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도둑의 변명이 있다.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왼손이 끌고 온 것이지 오른손은 끌고 온 것을 전혀 몰랐다는 변명도 있다. 돈을 먹고 사는 정치, 숙명처럼 붙어 다니는 정치와 돈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궁금하다.

‘돈타령’ 가사에는 ‘청계천 꼭지딴 돈’도 등장한다. 예부터 한양 청계천에는 거지들이 몰려 살았고 그 우두머리를 꼭지딴이라고 불렀다. 이 꼭지딴이 거지들로부터 어렵게 어렵게 긁어모은 돈이라 하여 한 푼이라도 아껴 써야 할 천금 같은 돈이라는 뜻이다.

기생과 얽힌 돈 이야기도 있다. 바로 ‘신창청루(新倉靑樓) 해어화채’이다. 신창청루는 기생이 술을 치는 술집을 말하고 기생은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해서 해어화라 불렀기 때문에 ‘해어화채’는 몸 팔아 번 돈이다. 눈물 나는 돈이 아닐 수 없다.

옛날 주막에는 ‘주모 넉살 돈’이 있었다. 대체로 주모는 객을 상대로 장사하면서 입심도 좋고 ‘쌈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역할을 해냈다. 따라서 우스갯소리도 잘하고. 음담패설도 마다하지 않는 넉살 좋은 여인들이었다. 그런 주모들의 넉살에 손님들이 웃음 돈을 얹어 주곤 했던 것이니 오늘날의 팁이라 할 수 있겠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옛 선비들은 현금을 주고받을 일이 있을 때는 쇠젓가락으로 엽전 꾸러미를 집어서 주고받았다. 돈을 더럽게 여긴 것이라기보다는 재물욕을 멀리하겠다는 그런 의지 표현으로 봐야 한다. 선비들은 또 주고받는 돈의 내력을 소급해서 따지기까지 했다. 이 돈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돈이냐, 그렇게 따져서 돈의 근본이 악한 곳에서 나왔거나 악한 사연으로 만들어진 돈이라면 일절 거들떠보지 않았다. 굳이 받아야 할 때는 그 돈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썼다. 돈을 세탁한 것이다. 지금의 돈세탁과는 전혀 다른 돈세탁이다. 그런 식으로 한국의 선비들은 재물에 대한 치열한 관념이 있었다.

돈은 곧 재물의 집약체다. 옛말에 이르기를 재(財)가 재(嶺)를 넘으면 재(災)가 된다고 했다. 재물이 넘지 말아야 할 고개를 넘으면 즉 지켜야 할 선을 넘으면 그 재물은 재앙이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경제인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가 바로 이 재(嶺)인 것이다.

LH 사태로 불거진 부동산 파국 사태는 넘지 못할 재(財)가 재(嶺)를 넘어 재(災)가 된 꼴이다.
최정철 교수는 그의 글 말미에서 “돈은 돌고 돈다 해서 돈이다, 라는 말도 있다. 돈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은 살면서 돈에 마음 약해지는 일, 숱하게 겪는다. 돈을 너무 밝히면 인성이 어두워지고 그렇다고 돈을 멀리하면 먹고사는 것이 고통스러워진다. 그저 자신의 기량에 맞는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또 그에 맞는 정당한 대가의 돈을 손에 쥐며 사는 것. 그것이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이겠다”라고 적었다. 돈이 원수가 되지 않는, 돈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없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