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미투’ 백날 해봐야 헛것, 실종된 성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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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미투’ 백날 해봐야 헛것, 실종된 성윤리
  • 입력 : 2021. 01.27(수) 10:07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인권과 성평등을 강조해온 진보 진영에서 당대표가 성추행 사건으로 직위해제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 뉴시스
나라의 어른들이, 지도자들이 해도 너무 한다. ‘모범’이나 ‘솔선수범’까지는 아니어도 보통사람들만큼이라도 생각 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 운운하지 말고 사람 노릇 좀 하면서 살자. 음흉한 미소, 느끼한 눈빛, 그 어느 하나 어른스럽지 않다. 온통 ‘뭐 묻은 놈이 재 묻은 놈 흉보는 꼴’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열거하기도 부끄럽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도시의 수장이 그랬고, 가장 공정해야 할 전직 법무부 고위 간부에, 국회의원에, 이번에는 가장 정의로워야 할 진보정당의 대표가 일을 저질렀다. 여기에 한 방송사 보도에 따르면, 대표적 탈북인사는 같은 고향 여성을 성폭행하고, 재산가에게 로비의 수단으로 삼았다. 성 윤리가, 성도덕을 뿌리째 흔들어 놓은 대한민국 지도자의 현주소이다.

권력자들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은, 그들이 무슨 변명을 앞세워도 ‘갑’과 ‘을’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인권과 생활권을 침해하는 차별행위이다. 2017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미투 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피해 구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었지만, 그들 사회에서는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그들의 성범죄 문제 역시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최근 들어 성 비위 행위 건수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그들의 성범죄는 대부분 위계관계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죄책감, 불안감으로 인해 성범죄 피해 사실을 제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인다. 여기에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도 한몫한다. 솜방망이기 쇠방망이 될 기미마저 안 보이는 암울한 상황이다.

따라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는 힘을 지닌 가해자와 ‘을’의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 사이의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와 생존권 침해와 같은 2차 피해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 생계와 맞물려 또는 승진 같은 보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가 자신의 신분을 노출 시키며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학습효과’란 용어가 있다. 원래는 경영학에서 쓰이는 말이다. 특정한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그 일에 익숙해지는 효과로 대개 긍정적 현상에 쓰이는데, 우리의 잘난 정치 지도자들의 언행을 통한 ‘학습효과’가 부정적 형태로 일반 대중에게 나타난다. 그들이 보여준 성 관련 추태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비뚤어진 ‘학습효과’로 작용한다.

권력과 재력을 지닌 사회 지도층의 성적 일탈을 담은 드라마가 꾸준히 방송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 시대의 ‘사랑 부재’가 실감되는 순간이다. / 드라마 포스터

지도자들의 성추문은 유형별로는 언어적 성희롱에서 시작해 강제추행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지속적 스캔들에 따른 학습효과는 특히, 모바일 환경이 정착되면서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같이 메신저앱상에서 언어를 통한 성희롱, 음란물 전송 등이 포함된 ‘기타’ 유형의 성범죄도 빠르게 늘고 있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운 것을 감안할 때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불거질 우려가 큰 실정이다. 잘못된 학습효과가 가져오는 폐해이다.

못난 지도자에 의한 학습효과 못지않게 TV드라마에서 주입되는 학습효과도 우려된다. TV드라마가 비록 허구적이기는 하나 인간사회의 현실을 그리고 있음을 볼 때, 작품 속의 인물은 결코 사회와 무관하지 않으며 현실적 인물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근래 들어 권력과 재력을 지닌 지도자들의 성적 일탈을 담은 드라마들이 꾸준히 방송되고 있다. 지난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JTBC 주말극 ‘부부의 세계’가 대표적이다. 엔터테인먼트 대표, 회계사, 재력가인 남자들, 여기에 능력 있는 의사, 미인대회 출신인 재벌의 딸이 얽히고설켜 불륜 드라마를 이어간다.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인물들이 실종된 성윤리의 교과서를 보여준다.

지난해 하반기 시즌1으로 시작한 SBS의 ‘펜트하우스’는 잘난 사람들의 젠더 파괴 모습을 그린다. 부동산 재벌, 법조인 재벌가의 2세 변호사, 종합병원의 실세 의사와 재벌가 여인들, 선택받은 자들만 산다는 100층 펜트하우스에서 펼치는 목불인견의 드라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성 윤리는 최악의 케이스만을 모아놓은 종합 불륜으로 이어진다. ‘성상품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같은 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내달 19일 시작되는 시즌2를 기다리는 시청자가 많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표본이다.

방송 중인 KBS2의 ‘바람피면 죽는다’는 아예 제목 자체를 역설적으로 잡았다. ‘바람피우는 것’으로 시작해 ‘바람 핀 사람은 죽인다’는 내용이다.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성공한 ‘어른’들이다. 성공한 이혼전문 변호사에, 유명 추리작가인 부인은 ‘살인 독거미’이고, 한류스타인 방송MC가 끼어들고, 성윤리가 실종된 이들 사이에 참신한 여대생을 끼워 넣어 세대를 넘나들며 “성 윤리가 어디까지 추락하는가”를 보여준다.

이 불륜의 세계에 제목만 낭만적인 TV조선의 ‘결혼작사 이혼작곡’이 숟가락을 얹었다. 고작 2회 방송이어서 예단이 섣부를 수 있겠으나, 드라마 전개에 ‘성적 희롱’이 스멀스멀 그림자를 드리운다. 재벌 2세인 변호사, 잘 나가는 의사와 모범남편인 연영과 교수의 언행에서 불륜의 수 싸움이 보이고, 미모의 라디오DJ의 반격이 시작된다. 여기에 노주현, 김응수가 연기하는 재벌 놀음과 그들 파트너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무너진 성 윤리 의식을 보면서, 높은 시청률의 드라마 주인공들을 보면서 이 시대의 ‘사랑 부재’를 실감하다. 그들에게는 ‘사랑’이 없다. 물론 우리는 쉽게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잘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실수하고, 불필요하게 마음을 다치고, 고통스러워한다. 사랑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배워야 제대로 할 수 있다. ‘학습효과’ 때문이다. 지도자들과 TV드라마는 우리에게 올바른 사랑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무슨 일에건 잠재적 위험은 있게 마련이다.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있지만 단지 운이 좋아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때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현상을 두고 컬럼비아대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편차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라고 불렀다. 정상적이지 않은 현상이 지속되지만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현상을 점차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TV 시청은 큰 위안을 준다. 그런데 TV를 켜면 뉴스에서는 지도자들의 성 추문이, 드라마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불륜 연기뿐이니, 다이앤 본의 지적처럼 ‘비정상적인 현상’을 일반 대중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뉴스나 드라마는 시대의 사회상과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 모습을 흥미 위주로만 영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정적인 요소들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경각심을 높이고, 감동을 주는 표현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가 처음엔 분노 가득한 흥분 상태가 되지만, 종국에는 그 속의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올바른 ‘학습효과’를 기대하는 이유이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