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모소대나무와 신호등, 그리고 기다림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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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모소대나무와 신호등, 그리고 기다림
  • 입력 : 2021. 01.19(화) 17:29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4년 동안 자라지 않다가 5년째 되는 날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는 모소대나무의 생장 과정을 통해 삶의 교훈과 기다림의 미학을 깨우친다. / IBK기업은행 광고 영상 캡처
한 금융기관의 기업 이미지 광고에 등장하는 ‘모소대나무’ 관련 카피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랫동안 머물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광고에 등장하는 청년창업자의 멘트가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에서 청년창업자는 “사장님, 모소대나무라는 게 있답니다. 4년 동안은 전혀 자라고 있지 않다가 5년째 되는 어느 날 갑자기 울창한 숲이 되는데 키운 사람들은 하나도 놀라지 않는데요.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희가 하는 일도 그런 일들입니다. 기업을 알아보고 믿고 지지해 주는 일 아직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 기업들을 위해”라고 말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소대나무는 대나무 중에 최고로 치는 중국의 극동지방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이다. 일명 모죽(毛竹)이라 불리는 이 대나무는 땅이 척박하든 기름지든 간에 씨를 뿌리고 나면 아무리 물을 주고 가꾸어도 4년이 지나도 불과 3cm밖에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이 대나무는 5년째 되는 날부터 손가락만 하던 죽순이 주 성장기인 4월에 이르면 갑자기 하루에 무려 30cm가 넘게 쑥쑥 자라며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6주 만에 15m 이상 자라나 텅 비어있던 대나무밭이 빽빽하고 울창한 숲으로 변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모소대나무는 왜 지난 4년간 성장이 멈춰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 의문을 품은 학자들이 땅을 파 보았더니 대나무의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내려 땅속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동안 전혀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뿌리를 내리는 준비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하루에 30cm가량 쑥쑥 자라도 그 몸통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다 자란 대나무는 어떤 비바람이나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으며, 사람이 타고 올라가 무술을 펼쳐도 끄떡없다. 이안 감독과 주윤발, 양자경, 장쯔이 주연의 영화 ‘와호장룡’의 유명한 대나무 숲 액션 장면에 등장한 것도 모소대나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저서를 통해 “지금의 흔들림은 지극히 당연한 어른되기의 여정”이라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 뉴시스

이런 특성 때문에 모소대나무가 성장 과정에서 견뎌낸 인고의 세월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교훈이 되곤 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오우아 펴냄)’에서도 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서 김난도 교수는 “조금은 흔들려도 괜찮다고, 지금의 흔들림은 지극히 당연한 어른 되기의 여정이라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며 어른의 흔들림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러므로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너무 많이 아파하지도 말라는 것, 삶이 나를 거칠게 흔들 땐 꼿꼿이 버티다가 나가떨어지거나 부러지기보단 함께 흔들리며 한 뼘씩 성장하고 새로워지는 것이 진짜 어른이다”라고 일깨워주고 있다.

김난도 교수의 일깨움을 이 광고에서 ‘모소대나무’의 생장 과정과 결합해 청년창업자의 발언으로 이어냈고,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지내는 대중에게도 높은 호응을 끌어냈다. 이 금융기관은 요즘 인기 스포츠로 주목 받는 여자배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배구단의 실적이 저조할 때면, 중계 화면에 ‘모소대나무 같은 선수들’이라며 신인 선수들을 소개하고 있다. 광고의 주제를 적절히 이용하는 성공한 광고 전략이랄 수 있다.

모소대나무의 교훈은 ‘신호등의 교훈’과 일맥상통한다. 붉은색 신호가 켜지면 모든 차량은 진행을 멈춘다. 건널목의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춘다. 모두가 곧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뀔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소대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4년이란 시간을 견디면, 5년째 놀랄만한 성장을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교훈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불안과 힘듦의 시대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비등점을 코앞에 둔 펄펄 끓는 물과 같다. 곧 그 기다림의 보상이, 신호들의 색깔이 바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대나무로 쑥쑥 커갈 시간이 올 것이 분명하다.

김 교수의 말처럼 우리의 삶도 모소대나무와 많이 닮아있다.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쉽게 포기하곤 한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내실을 다지며 성공을 위해 준비하는 시기를 꾸준히 가졌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구체적인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현재의 시간이 미래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끊임없이 도전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을까. 뿌리 깊은 조급증 때문이다. 오죽하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콩밭에 가서 두부 찾는다”, “싸전에 가서 밥 달라고 한다” 같은 속담이 요즘도 회자되는 현실이다. 모두가 일의 순서도 모르고 성급하게 덤빈다. 빨리빨리 문화가 모소대나무의 교훈을 잊게 한다.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안내 방송이 나오면 갑자기 승객들이 술렁거린다. 짐꾸러미 챙기기에 부산한 모습하다. 어느샌가 출입구에는 짐을 든 채로 줄을 서기 시작한다. 해외여행 때도 마찬가지다. 보통 항공기의 경우 착륙 30분 전쯤에 기장의 안내가 나온다. 승무원들의 제지에도 많은 승객은 자기 짐 챙기기에 바쁘고 하나둘 통로에 줄을 서기 시작한다. 아무리 빨리 비행기에서 내려도 다음 절차는 변하지 않는다. 몇 분을 먼저 내리기 위해서 30분을 짐을 들고 진 채로 서서 기다릴 수 있는 용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이해도 해석도 되지 않는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성어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우리네 모습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당장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서 행동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리라. 우리네 모습은 항상 무엇에 쫓기는지 급하기만 하다. 이는 오랜 세월 생존을 위한 모진 삶의 현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려움의 시간이다. 기다림이 필요한 때이다. 생계와 직결된 기다림은 사실 잔인하다. 그래서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생계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기다림의 미학’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보내야 할 때이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