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길의 사람들] 자연의 색을 품은 무대미술가 이병복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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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길의 사람들] 자연의 색을 품은 무대미술가 이병복
  • 입력 : 2020. 11.16(월) 14:50
  • 배우 권병길
이병복 선생은 우리나라 1세대 무대미술가로, 한평생을 연극 무대 뒷바라지로 살아왔다. 그는 생전 “연극은 수공업의 예술이다”고 말하며 순수 예술지향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 한국연극협회 제공
이병복(1927~2017) 선생은 무대 미술가인 동시에 연극을 평생 사랑한 연극인이다. 선생은 본시 뒷광대란 말을 좋아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조명을 받으며 펼쳐지는 연극무대, 그 뒤편에서 빛도 없이 묵묵히 그러나 자긍심을 갖고 일하는 뒷광대의 보람을 느끼고 작업했기 때문이다.

“연극은 수공업의 예술이다”란 말 속에는 순수 예술지향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다. 희곡을 읽고 무대 공간을 채우는 상상, 텅 빈 그 곳은 자신의 자유혼을 불어 넣는 곳, 그래서 창의적 세계를 펼쳐 꾸며진 무대는 애정을 담은 예술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자신의 꿈과 열정을 뽐낸 독창적 세계에 관객의 반응을 기다린다.

이병복은 이화여자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48년 오화섭·박노경 부부가 운영하는 극단 ‘여인소극장’의 단원으로 연극의 문에 들어선다. 그러나 1950년 전쟁으로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일부는 월북했다. 단장인 박노경 대표도 불행한 일을 당하는 아픈 과거가 있다.

그 후 부산에서 만난 권옥연(서양화가)과 결혼 후 1957년 남편을 따라 프랑스로 유학, 소르본느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1961년 귀국한다. 꿈과 상상력이 넘치는 젊은 시절 독창적 삶을 동경한 이병복은 그 후 프랑스에서 알게 된 김정옥(1932~)이라는 프랑스 유학파를 만나 의기투합한다.

이병복(여)과 김정옥(남), 이름에서 보듯 두 사람의 이름은 성별이 바뀐 듯하다. 하지만 남녀평등 공동의 극단 책임자로 나선다. 한 분은 대표, 한 분은 상임 연출로 극단 ‘자유극장’을 1966년에 창단하여 연극계 활성화에 공을 세운다. 첫 작품으로 ‘따라지의 향연(스칼페타 작)’을 공연해 화제를 모은다. 여기에 등장한 배우들은 나옥주, 최불암, 김관수, 김혜자, 함현진, 박정자 등이다.

극단 자유극장은 초기 작품들을 선정하는데 고심했을 것이다. 사회가 우울하고 코미디를 경시하던 시대였다. 연극계 풍조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그들은 첫 작품 ‘따라지의 향연’을 통해 웃음과 해학을 선사했다. 이어 ‘신의 대리인’, ‘해녀 뭍에 오르다(오영진 작)’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최인훈 작)’등 문제작들을 김정옥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 연극계의 화제를 모았다.

이병복·김정옥 선생은 1966년 극단 ‘자유극장’을 창립한 뒤 50여 년간 극단을 이끌며 무대 미술과 연출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의 활약은 연극계 활성화에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이병복은 1978년 ‘환도와 리스(아라발 작, 이윤영 연출)’에서 본격적으로 본인의 무대 미술 세계를 나타낸다. 이어서 박우춘 원작 김정옥 연출의 집단 창작 ‘무엇이 될꼬하니’를 통해 이병복의 무대미술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 시기는 한일 관계 해빙기였는데, 연극 교류를 열망하던 양국의 첫 공연 날이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10월 26일이었다. 공연을 하느냐 못하느냐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일본 ‘스바르 극단’의 내한 공연은 계엄사의 허락으로 이틀간 세종문화회관 중극장에서 무사히 치러졌다.

이어 12월 초에 극단 자유가 ‘무엇이 될꼬하니’를 도쿄, 나고야, 오사카에서 공연, 첫 해외 진출을 한다. 우리의 민속 민담 설화를 소리 몸짓 의상 등으로 수놓은 이 작품을 통해 극단 자유의 집단 앙상블은 일본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이병복은 스페인의 유명한 작품 가르시아 로르카의 ‘피의 결혼’과 김정옥 작·연출의 ‘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고’ 등의 작품에 검은 천과 삼베 조각을 엮어 차일을 만들고, 오방색의 아름다운 색상으로 진하게 드러낸 무대를 꾸민다.

유럽 문화에 상대적 열등감을 갖고 있던 우리 연극계의 자존심을 세운 이병복의 무대 미술은 문화적 긍지를 드높인 공연이 되었다. 프랑스 낭시(NAYCCY) 렌느(RENE) 세계 연극제, 스페인의 시저스, 바르셀로나, 말라가 연극제, 튀니지 하마메트 연극제, 네델란드, 체코의 블라디스라바 연극제, 일본 오키나와 연극제, 미국, 베네수엘라 등에서 공연했다.

우리 영혼의 소리를 담은 한국적 연극은 우리 연극에 낯설었던 서구의 그들에게 새롭게 다가갔다. 우리의 미학 그리고 신비, 장례 문화의 행렬(상여소리) 등이 선보였고, 이에 체코에서 열린 연극제는 그에게 세계무대미술가상을 수여했다.

이병복이 바라보는 미술의 색은 자연 속에 있다. ‘자연보다 튀지 않고 자연에 어우러지는 자연의 빛과 함께’ 는 작가의 색의 철학이다. 연극의 모든 의상의 자료는 삼베, 한지 등 토속적 재료를 섞인 우리의 전통적 의상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특히 무채색을 좋아했다. 무채색을 기본으로 많은 색을 만들어 내지만 요란하고 현란하지 않았다. 품격과 자유스러움이 숨 쉬는 무대와 편안한 의상으로 배우들을 돋보이게 한다.

배우. 인물평론가.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역임. 1968년 연극 ‘불모지’로 데뷔, 수많은 연극 영화 TV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대표작으로는 모노드라마 ‘별의 노래’와 연극 ‘햄릿’ ‘동키호테’ 등, 영화 ‘남영동 1985’ ‘마더’ ‘그때 그사람’ 등, TV드라마 ‘보이스’, ‘아이리스’ ‘제4공화국’ 등이 있다. ‘극단 자유’ 소속으로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연극제에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국제예술협회 영희연극상,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현대연극상 연기상, 서울 연극제 연기상, 최우수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하마매트’에서 진행된 야외공연 무대는 지금도 ‘세계적 걸작’으로 연극계의 전설이다. 섭씨 45도의 태양 빛 아래에서 그는 우리의 얼을 매달고, 광목을 펴고 오방색으로 치장하고 짚으로 새끼줄로 얼기설기 역은 무대를 만들어냈다. 이 무대는 현지인이 생전 보지 못한 것으로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소망과 얼과 혼을 펼쳐 보인 무대였다.

이병복 선생이 가신 자리는 크다. 연극계는 옛날로 올라 갈수록 장인 정신이 살아있다. 선생은 비록 아날로그 세대이지만 살아있는 예술정신으로 연극에 예술혼을 불어 넣었다.

어느 분야이든 어른이 없는 불행한 시대를 우리는 보고 있다. 그래서 이병복 선생의 그 치열했던 예술정신이 새롭다. 선생은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못 볼 일들을 다 보고 겪으면서 오직 “침묵은 금이다”를 신조처럼 지키던 예인이다.

선생은 정치적 무발언론자이며, 스스로 자제하는 불심자로 느끼고 깨닫는 종교적 철학을 지니고 살았다. 노동을 늘 즐겨서인가 여성으로의 손마디는 거칠었다. 이제 가신지 3년, ‘극단 자유 50년지’도 발간됐다. 많은 제자들을 뒤로 한 채 떠나신 이병복의 장인 정신이 그립다.

비록 소수일망정 그를 기리는 연극인들의 가슴에는 선생의 장인정신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의 연극계에 ‘이병복 정신’은 꼭 필요하다. 이는 연극의 품위와 순수예술로서의 자리매김을 위해서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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