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길의 사람들] 60년대 동인제 연극인들은 무슨 꿈을 꾸었나

칼럼/오피니언
칼럼/오피니언
[권병길의 사람들] 60년대 동인제 연극인들은 무슨 꿈을 꾸었나
  • 입력 : 2020. 10.26(월) 17:53
  • 배우 권병길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순수함과 열정으로 오직 완성도 높은 작품과 예술적 지향을 위해 힘을 모았다. 하지만 세월은 변화를 요구했고, 생계라는 현실적 문제에 봉착했다. 연극의 위기다. / 뉴시스
서울 대학로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연극 공연장은 100여 곳이 넘는다. 그 극장의 형태도 다양하다. 점점 안락한 첨단 시스템화 하여 젊은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골목마다 소극장이 넘쳐난다.

생각하면 60년대, 서울의 경우 명동 예술극장과 한국일보 중극장이 유일한 공연장이었고, 소극장이라야 겨우 명동의 까페 떼아뜨르 정도였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 시절, 연극 무대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엘리트 중심의 연극 예술인들이 동인제 극단을 만들어 창작극과 유능한 작가의 번역극을 봄, 가을 무대에 올림으로 크게 연극계가 고양되었다.

연극예술은 모든 예술의 출발선에 놓인 종합예술이다. 이 땅의 명배우들은 자신이 연극 무대 연기자로 출발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음악 미술 의상 조명 분장 소품에 이르기까지 수공업 노동을 거치며 비지땀을 흘렸던 예술작업은 어디에 비교될 수 없는 큰 보람이었다.

60년대를 기점으로 동인제 극단은 각자 극단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동인끼리 의지하며 만나게 된다. 극단 신협 이전에 극협이 있었고, 극단 실험극장, 극단 자유극장, 극단 제작극회, 극단 민중, 극단 광장, 극단 산하, 극단 가교, 극단 동랑레퍼토리, 극단 여인극장, 극단 산울림 등이 창단되어 연극계는 풍성한 르네상스 시대를 이뤄나갔다.

그러나 공연장은 턱없이 부족했다. 명동예술극장의 경우엔 추첨으로 공연 극단을 결정했다. 탈락한 극단은 공연을 못하게 된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된다. 그 무료한 시간동안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공연을 못하는 사람이나 단골 주점 혹은 다방에 모여 토론을 벌이고 친목을 다지며 울분을 토해내고는 했다.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순수함과 열정으로 오직 완성도 높은 작품과 예술적 지향을 위해 힘을 모았다. 또한 엄격한 객관적 판단 아래 연극에 몸담으려는 사람은 극단 식구가 되었고, 각자 맞는 기능 쪽을 선택해 가족 같은 단합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동인이 되면 애정 속에 질서를 유지했고, 탈 연극 행위는 존재할 수 없었다. 위계질서 또한 잘 유지되었다.

연극계는 60년대를 기점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이뤘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동인끼리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작품을 만들어갔다. 연극에 몸 바쳤던 원로들은 다시 머리를 맞댔다. 원로연극인회가 구성될 것으로 전해졌다. / 뉴시스

세월은 변화를 요구했다. 동인제의 한계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각자 필요 인력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쪽으로 제작 시스템이 바뀌어 나갔다. 연극계는 규모나 물적 토대, 즉 연극을 지향하는 방향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연극은 예술만의 영역이 아닌 타산적 인식이 짙어지면서 오염되기 시작한다. 연극인은 연극을 통해서 그 이름을 얻는다. 요즘은 연극인이라는 그 이름을 걸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 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연극이 필요할 때만 다시 돌아온다.

‘탈 연극 정신’은 ‘생계 우선’ 때문이다. 그 말이 잘못됐거나 ‘안 된다’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뒤를 받쳐줄 대책은 전무하다. 모든 열정을 바친 연극 작업이 수단화 되어가는 연극의 현주소다, 그 염려 또한 현실화 되어갔다.

지난 60~70년대의 연극 정신을 지키지 못한다면 예술 지상주의는 없다. 연극만의 고유한 장점들이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연극 정신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누구하나 견제치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세월이 지나며 이제 연극은 인력을 요구하는 영화나 TV매체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고, 이 역할은 연극인에게 유익한 방편이 되었다. 수많은 대학에서 전문지식을 배우고 익힌 연극 전공자 배출이 증가되는 등 연극을 위한 인구는 많아졌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마음이 급하다. 자신들의 쓰일 곳이 연극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극의 위기는 쓰나미처럼 몰려 왔다. 대학로에서는 끊임없이 의욕 넘치게 공연이 이어지지만 관객은 왠지 정비례하지 않는다. 아니 연극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이 연극에 고개를 돌린다. 이는 큰 위기다. 누구의 책임일 수 없다. 문화의식의 낙후이며 문화정책의 빈곤이다.

세대는 자연스럽게 바뀌어 간다. 연극에 몸 바쳤던 연극계 원로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니 정통 연극인들의 자리가 비어간다. 살아 있는 분들이 연극 걱정하기엔 옛날 같지 않다. 이제는 첨단 장비와 인력이 자본과 함께 연극에 몸담은 인고의 세월을 비웃듯 춤추고 노래하고 화려한 무대를 꾸민다. 연극이 인생을 탐닉하던 시대는 한낱 골동품으로 버림받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연극계 실상이다.

배우. 인물평론가.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역임. 1968년 연극 ‘불모지’로 데뷔, 수많은 연극 영화 TV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대표작으로는 모노드라마 ‘별의 노래’와 연극 ‘햄릿’ ‘동키호테’ 등, 영화 ‘남영동 1985’ ‘마더’ ‘그때 그사람’ 등, TV드라마 ‘보이스’, ‘아이리스’ ‘제4공화국’ 등이 있다. ‘극단 자유’ 소속으로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연극제에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국제예술협회 영희연극상,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현대연극상 연기상, 서울 연극제 연기상, 최우수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연극계는 오랜 전통의 인맥이 있다. 타산적이지 않으니 동인 의식은 끈끈하다. 그 분들이 흐르는 세월에 원로가 되었다. 밀려오는 연극의 새로운 풍조 앞에 존재의 뿌리를 생각하게 되었나보다. 그래서 지난 순수했던 연극정신의 재연에 힘쓰고 있다. 외로워지는 삶의 현장 연극 동네에서 ‘원로연극인회’를 만들고자 의견을 모아 결의를 다진다는 소식이다.

세상이 변해도 정신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세상이 변하니 정신도 변해야 한다는 것인가, 어느 쪽이 연극을 위해 옳은 선택일까 묻고 싶다. 젊은 연극인들 사이에서는 ‘원로대접’이란 말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원로회를 과거에 볼 수 없는 또 다른 의미의 조직은 아닌가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민의 형태만 다를 뿐 원로나 젊은 연극인이나 그 안팎을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이 땅의 열악한 연극계의 고민을 드러내는 모습일 뿐이다. 과거 일 년에 한두 편 무대에 서기 위해 봄에서 겨울까지 깨어 있었던, 오로지 꿈을 안고 배를 곯으며 살아온 연극 원로들은 덧없이 흘러간 세월 속에서 지금도 푸른 꿈을 노래하고 있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배우 권병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