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김이듬 시인과 동네책방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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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김이듬 시인과 동네책방
  • 입력 : 2020. 10.20(화) 15:58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동네책방들이 전국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책방지기들은 적자인생을 살고 있지만 문화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웃의 행복을 위해 운영을 접지 못하고 있다. / 뉴시스
김이듬 시인의 동네책방 ‘책방이듬’이 화제에 오르면서 ‘동네책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네책방은 글자 그대로 ‘동네’에 있는 작은 책방을 말한다. 동네책방은 ‘1인 가게’다. 주인(그들은 ‘책방지기’로 불린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A에서 Z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나홀로 책방’이다.

김이듬 시인은 그의 시집 ‘히스테리아(Hysteria)’가 미국에서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 수상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큰 상을 받은 작품의 원작자이지만 그에게 돌아올 상금은 없다. 상금 액수도 많지 않지만 그마저 번역자 몫이다. 덕분에 시집이 좀 팔리면 인세 수입은 좀 있으려나. 유명문인이 되었지만 그의 생활환경은 수상 전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인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이다. 특히 전업작가인 경우 그렇다. 김이듬 시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전업작가란 자존심을 지키면서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직업을 가졌는데, 그것이 ‘책방이듬’이란 간판을 내걸은 동네책방의 책방지기이다. 혼자 책방의 문을 열고 닫고 청소하고 고객을 맞는다. 책을 주문하고 진열하고 소개하고 파는 일도 물론 그의 몫이다. 그런 ‘1인 가게’ 운영으로 생활은 좀 나아졌는가 싶다.

그의 페이스북은 ‘책방이듬’이 대신한다. ‘책방이듬’ 페이스북을 방문해보니 책방지기인 김이듬 시인은 여전히 주머니 사정이 녹록치 않은 모양이다. 지난달 29일 담벼락에 이렇게 적었다. “추석 연휴 하루 전날 밤이다. 오늘 꼭 3년째, 즉 36번째 월세를 냈다. 사실은 지난달 월세도 오늘 냈다. 조금 울먹였고 착잡했다.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몹시 자괴감 드는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지금 월세도 제때 못내는 동네책방을 지키고 있다.

김이듬 시인 뿐 아니다. 거의 모든 책방지기들이 적자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동네책방은 전국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동네서점지도(bookshopmap.com)’의 집계에 따르면 2020년 5월 기준으로 전국 독립 서점은 총 583곳이 운영 중이다. 이 중 서울 208곳(35.7%), 인천 85곳(14.6%), 경기 74곳(12.7%)으로 수도권이 63%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제주가 38곳(6.5%)으로 수도권 외 지역 중에서 가장 많다. 또한 대구 19곳, 전남 15곳, 경북 14곳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네서점은 184곳이 새로 문을 열었고, 49곳이 문을 닫았다. 누적 휴폐점율은 2018년 10.7%에서 2019년 15.2%로 증가했다. 지난해 동네책방은 한 주 평균 약 3.5곳이 개점했고 1곳이 폐점했다. 안 되는 가게인 줄 알면서도, 동네책방 개점이 늘어나고, ‘옳고 그름’을, ‘맞다 틀리다’를 판단할 줄 아는 사람들이 책방지기에 뛰어드는 이유가 궁금하다.

김이듬 시인은 시집 ‘히스테리아’로 미국에서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 수상한 유명 문인이지만 그의 생활환경은 수상 전후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역시 동네책방을 운영 중이다. / 뉴시스
이에 대한 김이듬 시인의 답은 이렇다. “안 되는 이유를 안다. 나는 현실의 냉엄한 사실을 인정하고 장사해야 하는데,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일상 속의 문학을, 주민 속에서 예술을 함께해나간다고 생각했다. 문화예술의 저변확대랄까, 누구든 허물없이 문학을 논하고 서슴없이 작가들이랑 어울리고 저녁 먹고 나와 동네에서 뮤지션들의 연주를 듣거나 모여서 시 합평도 하고 독서모임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수공예도 배우며 품앗이 외국어스터디도 하는” 곳이라고. 적어도 동네책방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책방지기들이 책방들의 속사정을 몰라서 동네책방 운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동네책방이 겉으로 보는 것처럼 평화롭고 아름답지는 않다. 책 생태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파격적인 할인 판매, 무료 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서점과 온라인 쇼핑몰, 홈쇼핑, 대형마트 등 책방이 아닌 곳에서 다양한 혜택을 동반하여 책을 판매하는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요즈음이다.

동네책방은 정가판매를 고수한다. 적립금도 없다. 책을 사려면 고객이 발품을 팔아 직접 찾아가야 한다. 책의 종류도 많지 않고, 책이 잘 팔리지도 않는다. 온갖 조건이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에 비해 열악하다. 그렇다고 동네책방 책방지기라고 해서 누구의 존경을 받거나 감사의 인사가 따라오지도 않는다. 김이듬 시인은 “작가들은 내가 장사한다며 왕따 시키고, 장사하시는 분들은 내가 작가라고 왕따 시키니 나는 참 고독하다”고 했다.

“내가 밥 얻어먹자고 내 배 부르려고 하는 짓 아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누구 하나 칭찬하는 것도 아닌 일에 3년 피땀 쏟았다. 생색내려는 거 아니다. 나도 인간인지라 이런 날은 마구 아무 생각이나 난다. 오늘은 누가 한 사람이라도 소주 한잔 사주었다면, 어깨 툭툭 치며 고생했다 말했다면. 남은 것은 바닥난 자존감과 텅 빈 지갑... 공허한 헛소리.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사랑방이길 바랐다”고 시인은 말을 잇는다. 그리고 “제가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라고 맺음말을 던졌다. 동네책방 책방지기의 어려움이 전해진다.

인천시 강화도 작은 촌락에서 ‘우공책방’을 열고 있는 김시언 책방지기는 “책방을 한다는 것은 곧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하루하루가 온통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다. 오전 열 시 반에 책방 문을 열 때부터 오후 여섯 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그저 기다리고 기다린다”고 말한다. 기다리기 위해 책방을 한다니 그에게 ‘기다림’은 ‘행복’이다. 책방지기들은 이웃의 행복을 위해 동네책방 운영을 접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바보 장사꾼들은 계속 늘어가고 있다.

이제 외국 영화 또는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했던, 독특하고 개성 강한 동네책방들이 여기저기 앞 다퉈 등장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골목 어귀에 작은 책방이 자리 잡은 풍경은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책방 순례’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어느덧 동네책방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여행지 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회자되곤 한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책과 더할 수 없이 어울리는 분위기, 책방지기들이 공들여 고른 책들, 다양한 굿즈와 개성 강한 음료까지 즐길 수 있는 선택의 폭이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되었다. 그 덕분에 분위기 좋은 책방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 차 한 잔과 더불어 즐기는 일을 누구나 어렵지 않게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동네책방은 책만 파는 데가 아니다. 동네책방의 단골 이벤트로는 ‘독서모임’과 ‘저자초청모임’, ‘북콘서트’, 템플스테이처럼 하룻밤 묵으며 책과 친해지는 북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동네책방은 책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웃과 소통하면서 문화를 말하는 공간이다.

책방지기들이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동네책방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하나이다. 자신들처럼 문화공간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10%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고 더 빨리 받을 수도 있을 텐데, 굳이 마을의 동네책방에 주문하고, 그 책을 찾으러 나들이를 하는, 그렇게 ‘방콕’에서 ‘생활의 여유’를 찾는 사람들이다. 책을 주문하고 더디 받더라도, 정가를 내더라도 동네책방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 불이익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동네책방에 책을 주문하고 구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웃에 있는 책방의 가치가 10%의 할인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 개브리얼 제빈의 소설 ‘섬에 있는 서점’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