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길의 사람들] 좋은 영화는 누가 만드는가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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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길의 사람들] 좋은 영화는 누가 만드는가
  • 입력 : 2020. 10.19(월) 15:09
  • 배우 권병길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영화 속 잔잔히 흐르는 사랑의 심리로 영화인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은 영화는 자본보다 문화의식과 문화정책에서 나온다.”

살을 에는 추운 겨울에도, 가난이 모든 꿈을 앗아가는 처지에도, 한편의 영화에 아픔이 녹아지고 희망이 피어나는 신비함을 경험하게 된다. 누구든 지난 세월의 그런 기억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그 사회의 시대 현상을 대변하면서 보는 이의 내면세계에 파고든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 당사자나 관객이 함께 일치하는 창조자가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한 영화를 만들어 우리 영화계의 르네상스 시대를 펼친 유현목, 신상옥, 김기영, 김수용, 임권택, 이만희, 강대진 감독 등의 작품을 되새겨보고 오늘의 영화계 현실을 진단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그들이 영화를 만들던 시절은 모든 환경이 열악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수작들을 남김으로 후대에 존경과 이름을 남기게 됨은 축복이다.

아름다운 영화는 화려하지 않았다. 소품처럼 예뻤다. 수십억 수백억 투자되어 만들 가치가 있는 영화도 있지만 반대로 적은 예산으로 만들었지만 내용이 좋아 감동을 주는 영화도 많았다. 영화라는 매체는 기술인 동시에 예술이다. 상업적 계산이 돼야 하지만 예술적 가치가 꼭 더해 져야 좋은 영화라 할 수 있다. 고도의 기술과 상업적 계산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영화인이 주인이 되어야 영화가 살아난다.

신상옥(1926~2006)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를 영화 마니아들이 명작으로 꼽는 이유는 그 영화 속을 잔잔히 흐르는 신비한 사랑의 심리 때문이다. 소박한 한옥에 기거하기 위해 들어온 사랑방 손님(김진규)과 주인인 미망인(최은희)의 설레는 마음을 감독은 끌어낸다. 그리고 어린 딸(전영선)을 통해 서로의 심리 상태를 확인하는 소박한 내면을 거울 보듯 표현한다. 그 화면 전개가 예쁘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60년대 초 해방촌을 배경으로 두 형제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배우들의 명연기는 물론 영상미학의 걸작으로 남는 작품이다.
김진규와 최은희의 조화로운 연기와 아역 배우 전영선의 깜찍한 실연이 영화를 더욱 품격 있게 이끈 소품 같은 작품이다. 거기에 배우 도금봉, 김희갑의 일품 연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저예산 영화다. 그런데도 영화의 향기가 극장에 가득했다. 90년대 말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비교되기도 한다.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오발탄(1961)’은 60년대 초 암울했던 시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피난민들이 사는 해방촌을 배경으로 두 형제가 가난을 헤쳐 나가는 상반된 모습을 영화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유현목 감독의 영상미학의 걸작으로 남는 작품이다. 주인공 철호 역의 김진규와 영호 역의 최무룡, 두 배우의 명연기로 작품의 품격을 높였다.

영화 ‘오발탄’은 평단에서 우리 영화사에 남을 대표작으로 기록한다. 그 의미는 작가주의 정신에 충실한 작품이었음을 말한다. 당시 서구의 네오리얼리즘 영화에 버금가는 명작으로 꼽을 수 있다.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이 만나는 소용돌이 속에서 ‘오발탄’은 탄생했다. 이들 작품에서 보듯 좋은 영화 생산은 자본 투자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또 하나의 진실과 지성과 양심에 주목하게 된다.

김기영(1919~1998) 감독은 괴짜 감독이고 앞서간 예술감독이었다. 그의 초기작 ‘하녀(1960)’는 표현주의의 대표작이다. 같은 장소의 오픈 세트에서 처음과 끝을 매듭짓는 연출수법은 봉준호 박찬욱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다. ‘하녀’는 60년 전 봉준호의 ‘기생충’을 보는 듯하다. 김기영 감독은 표현 방법에서 시대를 앞서 나갔다. 공포와 철학적 의미를 담은 ‘하녀’는 2010년 임상수 감독에 의해 동명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이만희 감독의 ‘만추’는 작가, 연출, 촬영의 일체가 만들어낸 외로운 사람들의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필름은 유실된 상태다.
영화 연구가들은 “한국영화는 역시 60년대”라고 단언한다. 그 단언은 “60년대 영화 속에 인간의 맥박이 화면에 흐르고 심장을 움직이게 했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이는 “시공을 넘어 상징화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삶의 모습은 어제 오늘이 다르다. 이 말은 “사람들의 삶속에 영화의 위치가 선 자리가 서로 다르다”는 의미다.

강대진(1935~1987)감독의 ‘마부(1961)’는 서민들 삶을 대변한 영화다. ‘마부’의 명배우 김승호는 걸쭉한 서민의 애환을 가슴 저리게 연기한다. 그 시대 우리들의 아버지들의 고뇌를 되씹게 하는 연기다. 고통을 나누는 이웃들의 숨결이 영화 속에 이어지고 있다. 아들 신영균이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고시합격 통지를 받는다는 설정은 많은 관객과 더불어 환희를 만끽하게 했다. 강대진 감독은 서민을 향한 영화 ‘박서방(1960)’으로 이미 유명했고, ‘해 떨어지기 전에(1960)’, 그리고 최무룡의 노래로 유명세를 더한 영화 ‘외나무다리(1962)’를 연출했다.

모든 영화는 각각 표현의 향기가 다르다. 그 중 가을만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이만희(1931~1975)감독의 ‘만추(1966)’다. 감독의 내면세계가 가장 잘 드러난 걸작이다. 낡은 바바리 깃을 올린 가을 여인 문정숙의 고독한 연기는 일품이다. 작가와 연출과 촬영의 일체가 만들어낸 외로운 사람들의 영화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화의 필름은 유실된 상태이다.

신성일은 ‘만추’ 필름이 소실된 것을 끝내 아쉬워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그 필름에 대한 애착은 남달랐다. 사실 1966년에 필자가 보았던 영화 ‘만추’는 작품 속에 흐르는 음악 또한 뛰어났다. 사라진 필름 대신 사진을 편집해 만들어 공개된 유투브 영상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만추’ 필름을 “평양 필름 보관소에서 보았다”는 고 신상옥 감독의 말에 우리는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다.

배우. 인물평론가.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역임. 1968년 연극 ‘불모지’로 데뷔, 수많은 연극 영화 TV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대표작으로는 모노드라마 ‘별의 노래’와 연극 ‘햄릿’ ‘동키호테’ 등, 영화 ‘남영동 1985’ ‘마더’ ‘그때 그사람’ 등, TV드라마 ‘보이스’, ‘아이리스’ ‘제4공화국’ 등이 있다. ‘극단 자유’ 소속으로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연극제에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국제예술협회 영희연극상,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현대연극상 연기상, 서울 연극제 연기상, 최우수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임권택(1936~ )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임권택 감독은 숫자상 가장 많은 작품을 연출한 영화감독이다. 하지만 임권택 감독이 빛나기 시작한 때는 80년대 초 김성동 원작 ‘만다라(1981)’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만다라’는 영화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시기에 안성기, 전무송 배우를 앞세워 극장에 붙었다.

‘만다라’는 불교 수행자의 고뇌와 애달픔을 탐미적 영상으로 그려내면서 새로운 영상 시대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 후 임권택 감독은 ‘길소뜸(1985)’, ‘씨받이(1986)’,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 등 걸쭉한 작품을 연출했으며 칸영화제가 주목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배우 최민식 주연인 ‘취화선(2002)’으로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차지한다.

김수용(1928~ )감독은 현존하는 감독 중 가장 원로이다. 100여편의 작품을 연출했으며, 대표작으로 ‘혈맥(1963)’, ‘갯마을(1965)’, ‘안개(1967)’ 등이 있다. “좋은 영화는 문학성이 있는 작품이다”라는 명제가 있다. 이제 영화계는 “이 시대에 상업영화에 매몰 되느냐 아니면 관객에게 다가가는 양질의 영화로 거듭나느냐”라는 큰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

지난 영화 가운데 이영재 감독의 ‘내 마음의 풍경(1999)’, 곽지균 감독의 ‘겨울 나그네(1986)’가 생각나고, 독립영화 성격을 띤 문신구 감독의 ‘원죄(2017)’는 충무로 마지막 세대의 고군분투를 엿보게 한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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