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대중음악과 협업, 진화하는 판소리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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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대중음악과 협업, 진화하는 판소리
  • 입력 : 2020. 10.14(수) 18:17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판소리가 문화재라는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대중음악화에 도전하고 있다. 오늘날의 젊은 소리꾼들이 다른 장르와 협업해 방송 오디션의 새바람을 불러왔다. / 뉴시스
국악(전통음악)계가 다양한 협업과 이슈를 만들어내며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별히 판소리 분야에서의 변화는 눈여겨 볼만하다. 트로트 붐에 신세대 소리꾼들이 대거 합류하고 괄목할 성과를 내면서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문화재’라는 ‘전통’의 틀에 갇혔던 판소리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판소리의 대중음악화’에 도전하고 있다.

판소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무형문화재다. 뿐만 아이라 2013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무형문화재는 공연 등의 구체적 형체가 없는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 예술적으로 가치가 큰 것. 또는 그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정의 대상이 된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 장단에 맞추어 창(唱), 아니리(소리와 소리 사이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 발림(소리꾼이 소리의 극적인 전개를 돕기 위하여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내용에 따라서 몸짓과 손짓으로 나타내는 동작)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 음악이다.

판소리의 구성을 보면, ‘창’은 글자 그대로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노래’ 자체다. ‘아니리’는 느린 템포의 ‘랩’과 유사하고, ‘발림’은 ‘연기’가 된다. 요즘 소리꾼들이 방송의 예능 음악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가창력에 더한 랩 실력과 연기력까지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소리꾼이 쉽게 대중음악에 녹아들 수 있는 것도 이런 장점을 갖고 있어서다.

판소리는 본래 열 두 마당이었으나 지금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 등 다섯 마당만이 전한다. 사전(다음백과)에 따르면 판소리는 17세기경 남도지방에서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에는 양반들을 대상으로 전성기를 맞았고, 20세기에는 국권상실과 서구화로 판소리가 사멸하고 무대예술로 변화했다.

송가인이 TV조선 ‘미스트롯’에 우승하면서 판소리를 전공한 소리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 방송화면 캡처

전문가들은 판소리가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중요성이 재인식되기 시작한 때를 1970년대 이후로 보고 있다. 그래서 문화재로 지정, 보호하면서 전통을 승계하고 있지만, 그 범위는 소리꾼에 한정되었을 뿐 일반 대중과 어울리는 전통음악으로서의 역할에는 한계를 보였다.

어느 분야이든 음악의 삶은 인간의 흥망성쇠와 비슷하다. 새 옷을 입고 나온 음악이어도 언젠가는 새로운 음악에 자신의 자리를 내주며 역사의 뒤안길로 걸어 들어간다. 판소리도 마찬가지이다. 1970년대부터 판소리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대학원까지 판소리를 전공한 소리꾼들조차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경우는 허다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전통음악인으로서의 소리꾼들이 예술가로 살아갈만한 ‘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그보다 타협하려는 오늘날의 젊은 소리꾼들에게 다른 장르와의 협업은 그들이 꿈꾸는 스테레오타입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트로트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방송 오디션은 소리꾼이 바라보는 희망의 무대가 되었다.

대한민국을 트로트 열풍의 발원지가 된 TV조선 ‘미스트롯’의 우승자 송가인이 그 스테레오 타입의 선두주자로 등장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목포 명창 박금희에게 판소리 ‘수궁가’와 ‘춘향가’를 시작했고, 광주예고를 거쳐 중앙대 음악극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한 그다. 송가인의 트로트 가수 변신과 성공은 다른 소리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진행된 방송사 오디션에 판소리를 전공한 소리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그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송가인이 판소리에 입문한 때와 같은 나이(12살)의 김다현. ‘청학동 훈장’으로 불리는 아버지 김봉곤의 둘째 딸로 이제는 ‘청학동 트로트신동’으로 불린다. 김다현은 MBN ‘보이스 트롯’에서 2위에 오르며 신선한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어린 소리꾼이 성인 트로트 가수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김다현은 ‘소리’를 생명으로 하는 가창력에서 판소리로 익힌 소리의 위력을 입증했다.

‘청학동 트로트신동’으로 불리는 김다현은 MBN ‘보이스트롯’에서 2위에 오르며 판소리의 위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 방송화면 캡처

송가인과 김다현은 음악으로서 판소리가 지닌 소리의 위력을 확인시킨 것 외에도 지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중요한 홍보대사의 역할도 수행해냈다. 송가인이 전라도 진도를, 김다현은 경상도 하동을 대표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출향 소리꾼을 발굴 육성 지원하는 소리꾼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에서는 그곳 출신 유라(본명 김유라)를 자랑할 만하다. 용인대 국악학과를 졸업했고, 초등학교 1학년에 판소리에 입문해 대학 전공까지 소리꾼 경력을 지녔다. 유라는 SBS ‘트롯신이 떴다2 Last chance’ 1라운드에서 이태호의 ‘간대요 글쎄’를 불러 출연자 중 최고점인 94점을 받아 현재 3라운드를 준비 중에 있다. 16년 국악 전공자인데도 심사위원인 설운도는 “트로트에 최적인 목소리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전북 남원시에는 이 시대 최고의 남성 소리꾼 이봉근이 있다.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금상(2003), KBS 국악대상 올해 예술상 연주 부문(2012) 등을 수상한 그는 영화 ‘소리꾼(감독 조정래)’의 주연배우로 출연해 만능 대중 소리꾼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최근 MBN의 ‘로또싱어’에 출연, 그룹 방탄소년단의 ‘봄날’을 불러 화제의 주인공이 되면서 소리꾼의 협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밖에도 방송에서 판소리 소리꾼의 음악적 역량을 보여준 국악 전공자들은 많다. Mnet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는 시즌마다 숨은 소리꾼을 등장시킨 대표 협업 음악 프로그램이다. 시즌1에서 이선희의 ‘인연’을 부른 일명 팔도유랑가수 권미희, 시즌2에서 거미의 ‘아니’를 불러 발라드와 국악의 절묘한 만남을 들려준 이윤아, 시즌3에서는 윤복희의 ‘여러분’을 들려준 인간문화재 손녀 정소리가 출연했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또 시즌5에는 12살 때 9시간 20분 동안 ‘심청가’와 ‘수궁가’를 완창해 최연소 최장시간 노래로 기네스 기록을 지닌 김주리가 출연했다. 시즌7에는 조선팝을 만든 퓨전국악인 서재현이 출연해 자우림의 ‘야상곡’을 불러 기립 박수를 받았고, 무형문화재 판소리 명창의 손녀인 나영주 나하은 자매가 출연해 안예은의 ‘상사화’를 노래했다. 잇따른 소리꾼들의 등장으로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는 “국악인이 나오면 그는 무조건 실력자”라는 불문율이 생기기도 했다.

이처럼 방송 예능 음악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젊은 소리꾼을 통해 국악은 대중음악과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협업의 성과는 새로운 K-pop 시장의 새로운 토양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일본 엔카 뿌리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트로트 음악과 전통 음악인 판소리의 결합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통가요, 민족음악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다.

전통음악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가치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문화 창조에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또 이렇게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재창조된 문화는 우리 사회의 결속력과 창의성을 높이는 데 일조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넓혀나가게 될 것이다. 전통음악을 재해석하고, 다른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음악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방송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들 콘텐츠 통해 우리 전통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