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톡톡] 삶의 아름다움을 담는 정관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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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톡톡] 삶의 아름다움을 담는 정관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 입력 : 2020. 10.09(금) 11:41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녹턴’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정관조 감독은 새 작품 ‘블랙하모니’ 제작 연출에 앞서 “비장애인을 ‘차별’이 아닌 ‘차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사진은 ‘녹턴’ 사진컷에서 가져왔다.
10월 8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42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정관조 감독의 영화 ‘녹턴(Noctum)’이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모스크바영화제는 칸, 베를린, 베니스와 함께 세계 4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권위를 지닌 국제영화제이다.

모스크바영화제는 러시아 영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소련국가영화위원회와 영화인 동맹이 1935년 창설한 동유럽권 최대의 영화제이다. 이 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서 우리나라 작품이 최우수상을 받은 것은 ‘녹턴’이 처음이다.

모스크바 영화제는 주요 부문과 다큐멘터리 부문, 단편영화 부문 등 3개 경쟁부문으로 나뉘어 개최되는데 다큐멘터리 부문에선 ‘녹턴’을 포함해 9편이 경쟁을 벌였다. 올해 영화제는 지난 10월 1일부터 8일까지 '카로 옥챠브리 상영관'을 포함한 모스크바 여러 영화관에서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가운데 진행됐다. 영화제 폐막식장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코로나19로 현장에 참석하지 못한 정관조 감독을 대신해 위명재 러시아 주재 한국문화원장이 대리 수상했다.

‘녹턴’의 정관조 감독은 영화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상 관계자들 사이에선 ‘귀재’로 통하는 실력자이다. 20년간 방송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왔으며, 현재는 독립 영화 제작사 ‘미디어나무’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영화 다큐멘터리 작품은 ‘녹턴’이 처음이다.

정관조 감독의 ‘녹턴’은 무려 11년의 긴 시간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자폐성 발달장애 연주자 은성호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는 2017년 8월 ‘서번트 성호를 부탁해’라는 제목으로 방영돼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영화는 자폐 서번트 피아니스트 형 성호, 동생 건기, 그리고 어머니 3명의 가족 이야기이다. 음악을 통해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며 성장하는 스토리를 2008년 첫 만남부터 11년 동안 기록한 영상에 쇼팽의 ‘녹턴’ 클래식 선율로 담아낸 작품이다.

쇼팽의 ‘녹턴’은 혹은 ‘야상곡(夜想曲)’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가 1827년에서 1846년까지 작곡한 21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21개의 ‘녹턴’은 독주 피아노의 연주와 연주회에서 연주되는 비중이 매우 높고 완벽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가운데 20번은 영화 ‘피아니스트’(감독 미카엘 하네케, 2001)의 OST로 쓰이면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게 만들었다.

주인공 성호가 지닌 ‘서번트 증후군’은 혼자서는 단추를 채우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사회생활이 어려운 특별한 현상을 보인다. 특정 행동을 반복하며 지능이 떨어지는 증상이기도 한데, 특정 영역에서는 천재성을 발휘해 예술적인 감각을 자랑하기도 한다.

넘치는 음악적 재능과 부족한 사회성 사이,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은성호의 가족들은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은성호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로 인해 그의 음악에 매달리는 엄마, 그럴수록 소외감이 커져가는 동생 은건기의 관계가 담긴다. 그들의 삶을 통해 감독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도 묵직하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부분은 “10년 넘는 세월을 2시간 안에 녹여낸 감독의 내공은 과연 어디서 나온 걸까?”이다. 그의 영화 ‘녹턴’은 지난해 9월 개최된 ‘제11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다. 한국 경쟁작으로 초청됐는데, 그 시사회에서 정관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음악적 천재성 자폐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성호에 대해 알고 싶어 시작했다. 찍다 보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찍을수록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관찰하고 기록하다보니 10년을 훌쩍 넘겨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확실한 건 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는 것,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정감독의 이 발언은 현장의 참가자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다 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는 말에 감동의 방점이 찍혔다. 감독이 작품 속 인물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자만할 때 작품은 본궤도를 잃고 방황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장에 참석한 정 감독의 한 방송 연출 선배는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 이해하려고 몰입한다.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란 말은 참 매력적이다. 작품이나 일상에서나 경계해야 할 태도라는 걸, 또 하나 배워간다. 안다고 착각하지 않았던 태도가 연출자의 가장 큰 내공이었다는 걸.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이 성호네 가족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왜 소중한지 알게 해준 이 영화가 고맙다.”라고 전했다.

DMZ영화제에서 정관조 감독은 ‘DMZ예술공헌상’을 받았다. 시사회가 끝난 후 ‘녹턴’은 네티즌 평점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았다. 네티즌 알엠은 “함축과 강조, 절제와 감동, 발달장애인에 대한 그동안의 어떤 영화들보다 더 많은 감동을 주는 이 시대의 수작”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단의 호평, 뒤늦게 국제영화제에서의 쾌거로 기록되는 ‘녹턴’이지만 국내 흥행 성적은 초라하다. 국내 개봉에서는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자료에 따르면 ‘녹턴’은 고작 322명이다. 관객 동원 숫자가 영화의 작품성 예술성과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영화이기도 하다.

정관조 감독은 현재 또 다른 장편 다큐 영화 ‘블랙하모니’를 제작 연출 중이다. ‘녹턴’처럼 이 영화 역시 인간의 삶의 아름다움을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는 새 작품에서 인간, 문화, 예술 등의 테마를 가지고 해외의 작가들과 협업 중이다.

‘블랙하모니’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쿄독스 국제다큐멘터리 피칭포럼'에서 최우수 기획으로 선정되어 상금 1백만엔을 받은 작품이다. 발달장애인으로 구성된 클라리넷 앙상블 팀이자 사회적 협동조합을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이다. BBC, NHK 등 해외 방송사들도 이 사실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녹턴’에 이어 두 번째 다큐 연출에 나선 정관조 감독의 ‘블랙하모니’에 국내외의 시선이 뜨거워진 요즘이다.

정관조 감독은 “끊임없이 하모니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이들은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장애인이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이다”라며 “이 사람들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장애인이 이런 것도 할 줄 아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장애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과 똑같다. 이들에게도 갈등이 있고 그럼에도 노력한다”라고 ‘블랙하모니’ 연출자로서의 각오를 밝혔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info@newscop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