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행복글방] 트로트 가수, 방송국을 점령하다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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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행복글방] 트로트 가수, 방송국을 점령하다
  • 입력 : 2020. 10.06(화) 11:10
  •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
나훈아의 등장은 현재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라이벌 남진의 활약과 더불어 후배 트로트 가수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 KBS 방송화면 캡처
나훈아의 방송 출연으로 트로트 전성시대는 정점을 찍었다. KBS는 그를 ‘가황(歌皇)’이라 불렀다. ‘가수들의 황제’라는 뜻이다. 가황이란 존칭이 적합한 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통해 그는 트로트 가요계 정상의 스타임을 입증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그를 ‘최고’로 평가한다.

문화비평가인 권병길 배우는 시청 후기에 “나훈아는 철학이 있는 가수로 성장했다. 트로트를 우리 정서의 깊은 혜안까지 발전시켰다”고 극찬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팝송도 나훈아가 부르면 트로트가 되는 저 독보적인 개성과 70세(실제 74세)가 되어서도 녹슬지 않는 가창력 그리고 엄청난 스케일과 버라이어티한 무대구성 모두 대단했다. 무엇보다 어느 시점에 어떤 콘텐츠로 방송에 나와야되는지를 아는 나훈아는 정말 멋진 상남자, 독보적인 뮤지션이다”고 평가했다.

나훈아가 지상파 방송을 장악해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던 그 시각 다른 지상파 방송(SBS)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트롯신이 떴다’ Last chance)에서는 그의 영원한 맞수 남진이 심사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라이벌전이 현재진행인 것처럼 묘하게도 같은 시간에 TV에 등장했다. 남진은 이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르고, 오디션에서는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나훈아의 등장은 현재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라이벌 남진의 활약과 더불어 후배 트로트 가수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혜은이, 설운도, 김연자, 진성, 주현미 같은 환갑을 전후한 노장들의 활약이 더해져 후배들을 트로트 전성시대의 주역으로 이끌고 있다.

이들 선배들의 적극적 시장 참여로 오랫동안 인기의 뒤안길에 머물렀던 트로트가 앞으로 그보다 더 오랫동안 대중음악 시장의 정점에서 최고의 인기 콘텐츠로 대중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트로트 가수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대중의 음악 취향이 어느 사이인가 트로트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미스트롯’에 이은 ‘미스터트롯’의 여파가 지금까지 지속되면서 각 방송사마다 앞다퉈 트로트 프로그램들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아이돌 가수들도 속속 편입되고 있다. / SBS ‘트롯신이 떴다’ 방송화면 캡처

요즘은 어디서나 트로트다. TV를 켜면 지상파 종편 케이블 할 것 없이 오락 예능 음악 프로그램은 트로트 가수의 출연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예 트로트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도 한 둘이 아니다. 지난해 ‘미스트롯’에 이은 ‘미스터트롯’의 여파가 지금까지 지속되면서 오디션의 형태도 다양화되고, 변별력을 지닌 프로그램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트로트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음악, 밤무대 음악, 행사용 음악, 한물간 음악으로 치부되며 가요계 주류에서 밀려나 변방 어디쯤인가 위치해 있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중음악이지만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옛 음악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 구태의 모습을 ‘미스·미스터트롯’이 일시에 벗겨버렸고 트로트를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하고 흥미로운 음악으로 재탄생시켰다.

방송사가 다투어 내놓고 있는 트로트 프로그램들은 전략의 핵심을 ‘트로트의 젊은음악화’에 두고 있다. 물론 프로그램의 타깃은 중년층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중년의 음악은 전형적인 트로트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였다. 출연자들부터 젊고 참신하다. 심지어는 어린 출연자들까지 합류하여 신선함을 배가시켰다. 이들은 ‘트로트’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중년 아저씨 아줌마풍의 노래가 아닌 새로운 형식의 트로트 음악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젊은 가수들은 옛 트로트 창법을 탈피했고, 트로트인지 발라드인지 댄스음악인지 구분이 어려운, 타 장르 음악과 자연스럽게 융합된 음악들도 선보였다. 더불어 아이돌 댄스, 태권도 춤, 듀엣 대결에 트로트 트리오 등장 등 볼거리도 함께 제공했다. 대중음악의 융복합이 진행되는 트로트는 이제 장르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따분했던 트로트를 신나고 재미있게 혹은 더 감동적으로 들을 수 있게 대중을 이끌고 있다.

오디션을 포함한 최근의 트로트 가수 출연 프로그램들은 잠재되어 있던 중년 소비자들에 주목하고 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고 있다. 중년층은 그동안 음악시장의 주 소비층이 아니었다. 중년층의 음악 소비는 10~20대에 비해 매우 저조하였고, 음악 청취 시간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었다.

지금의 트로트 열풍은 대중의 음악 소비 활동을 풍성하고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팬의 모습도 과거와 달리 적극적이다. / TV조선 ‘뽕숭아학당-우리 뽕짝됐어요’ 방송화면 캡처

하지만 변화된 프로그램들은 옛날과 똑같은 트로트, 가사도 들리지 않는 아이돌 음악 사이에서 음악에 목이 말랐던 중년층의 잠재된 욕구를 간파하였고, 이들이 원하던 신선한 트로트를 만들어 소비자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잠재되어 있던 팬들의 마음을 읽고 숨겨져 있던 소비욕구에 맞는 적합한 상품을 만들어 제공할 때, 소비자와 시장이 반응한다는 마케팅의 정석이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통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훈아 남진 같은 유명 기성가수, 특히 노장가수들의 전면 등장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SBS ‘트롯신이 떴다’는 기성가수들의 저력을 나타내면서, K팝 못지않은 K트로트의 영역 확산을 목표로 출발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외국 공연 길이 막히면서 다른 활로를 찾았는데, 이 콘셉트 추가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트롯신이 떴다-Last chance’는 ‘트롯신’들이 무명 가수들의 멘토로 등장해 경연을 벌이는데, 주변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노래 잘하는 무명가수가 많은가!”란 소리가 나올 만큼 대단한 실력을 지닌 무명가수들이 발굴되고 있다. 실제로 관계자들은 ‘Last chance’ 입상자들로 ‘미스·미스터 트롯’의 왕관이 벗겨질 것이라는 진단을 성급하게 내놓고 있다. 그 결과야 어찌 되었건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트로트 전성시대는 더욱 굳건해질 것은 분명하다.

대중음악시장이 K팝에서 K트로트로 재편된 모양은 여기저기에서 감지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시장을 이끌었던 아이돌그룹의 영향력이 정체, 나아가 후퇴하고 있다.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속속 트로트그룹으로 편입되고 있다. 씨엔블루 정용화가 ‘트롯신이 떴다’에 합류했고, 달샤벳 출신의 수빈, 레드삭스 출신의 채영인도 트로트가수로 변신을 선언했다. TV조선 ‘뽕숭아학당-우리 뽕짝됐어요’에는 씨스타 출신의 소유, 원더걸스 출신의 유빈, 오마이걸의 유아가 ‘미스터트롯’ 멤버들과 ‘짝’을 이뤄 잠시 트로트가수로 변신하기도 했다.

트로트 팬들도 달라졌다. 점잖게 앉아서 박수만 치던 예전 트로트 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어찌 보면 아이돌 팬의 모습과 더 유사하다. 방송사 랜선 참여에 적극적이고, 어머니, 할머니 심지어 할아버지까지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기 위해 유튜브에 들어가 ‘구독’과 ‘좋아요’를 누른다. 팬클럽에 가입해 자원봉사, 기부활동, 밥차·커피차 제공, 굿즈 구매 등등 팬으로서의 활동도 여느 아이돌 팬클럽 활동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두둑한 지갑에서 나오는 물적 지원은 웬만한 아이돌 팬클럽을 능가할 정도이다.

부산일보·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 TV리포트·티브데일리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소관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 합창’, ‘충무로 25시’ 등 소설과 시나리오 희곡 평론집 등을 집필했다.
과거 트로트 팬의 음악 소비가 유행이 지난 옛 노래를 혼자 들으며 추억만 쫓던 제한적인 소비였다면, 지금의 트로트 열풍은 대중의 음악 소비 활동을 풍성하고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수천 통의 전화를 걸어 음악을 신청하고, 캐릭터 상품을 사고, 팬클럽 활동을 통해 사회적 교류의 범위를 넓힌다.

대중문화의 적극적 소비는 소비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고,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즐거움을 배가하고, 또 다른 팬들과 차별화를 통해 남과 다름을 나타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문화와 예술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예술의 전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일의 일상에서 자주 즐기고 위로 받고, 감동하고 함께 누림으로써 삶이 풍요로워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문화와 예술이 사랑받는 이유가 될 것이다. 트로트가 대중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윤상길 한국미디어콘텐츠협회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