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길의 사람들] 불꽃처럼 살다간 신들린 배우 추송웅

칼럼/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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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길의 사람들] 불꽃처럼 살다간 신들린 배우 추송웅
  • 입력 : 2020. 09.28(월) 12:10
  • 배우 권병길
추송웅 선생은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제작하고 직접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신기 들린 그의 연기는 연극사상 유래가 없는 대박 공연으로 기록을 남겼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모든 연극배우들은 억울하고 비극적이다. 그들은 젊어서 연극배우를 직업으로 삼고자 작정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비극적 무게감에 짓눌려 산다. 그러나 연극배우는 개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연극 평론가 안치운 교수(호서대 연극학과)는 44세에 요절한 배우 추송웅(1941~1985)을 생각하며 쓴 논문 ‘배우 추송웅 연구’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대에 서는 연극배우는 연극이 끝나면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다. 육신의 혼은 이미지만 남고 시간과 공간을 떠나 흘러간다. 되돌려 볼 수 있는 영상과 다르게 연극은 긴 잔영만 남기고 흔적이 없다. 그러나 무대에서 쏟아낸 대사의 울림이나 움직임은 관객의 가슴속에 깊숙이 배여 오래도록 기억된다.

1940년대 배우 황철(1912~1961)이 비록 월북해서 흔적도 없이 떠났지만, 그의 연기는 구술로 전무후무한 배우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배우의 소리와 호흡, 움직임은 정의하기 힘들다. 60~80년대 초까지 20여 년간, 추송웅이라는 광대는 무대 위에서 그의 대사와 동작을 통해 내면에 가라앉은 자신의 끓는 심정을 마음껏 토해내며 관객과 더불어 웃고 울던 시절을 뒤로 하고 요절했다.

이 땅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독립운동을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만큼 힘든 과정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만나는 믿음을 연기로 표현하는 그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세월이 가도 연극 정신의 근본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날 연극이 수단화되고 도구화됐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난날 더 열악했던 선배들의 진정성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연극은 좋은 작품을 창조해 내면 관객의 사랑을 받게 되는 예술이다. 그 외의 요행을 바라고 편의주의로 작품에 임하고 연극의 무게를 타의에 의지해서 진행한다면, 그래서 결국 졸속한 작품으로 남는다면 관객은 외면할 것이다.

추송웅은 1960~80년대를 풍미했던 연극배우로, 그의 코미디는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인간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꼬집었다. 20여년간 관객과 웃고 울었던 그는 4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배우 추송웅 선생은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경상도 사투리가 억세게 체화된 고장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그는 표준말이 기준이어야 하는 연극 장르에 도전한다. 내면적 심정을 발산해야 사는 배우의 길을 운명처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은 어려서부터 대인 기피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눈은 사시안(斜視眼)이었고, 키는 자라지 않는 그래서 내성적 성격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 그리기를 즐기고, 피아노를 친다든가, 아름다운 세계를 동경하는 꿈 많은 소년이기도 했다.

이런 소년시절을 거치면서 그의 내면에서는 “언젠가 보았던 무대 위 조명 불빛 속에 숨어 들어가 내 자신을 표출하고 싶다”란 충동이 일었다. 이는 자신의 앞날을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적극적 선택의 동기가 된다. 그리고 선생은 관객 앞에 나타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가 움직이면 신기하게 관객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바로 이 관객의 호응은 그가 배우로서 적극적으로 연기하는 동력이 된다.

선생은 1963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악센트가 강한 경상도 사투리는 그를 어려움으로 이끈다. 배우의 표준말 구사는 연극의 기본이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투리를 고쳐보려고 몸부림쳤지만 교정이 쉽지 않았다.

선생은 ‘추송웅식 언어의 유희’를 선택했다. 그의 경상도 사투리는 유니크한 이탈리아와 프랑스 번역극에서 자연스럽게 멋으로 배어 나왔다. 그의 몰리에르나 셰익스피어, 스칼페타, 로벨또마 등 번역극은 창조적 코미디가 되었다. 추송웅식 코미디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관객의 허를 찔렀고, 무대를 사로잡으며 관객의 웃음을 유발했다.

선생은 ‘따라지의 향연(김정옥 연출)’, ‘빠담빠담빠담(표재순 연출)’, ‘세빌리아 이발사’, ‘우리 집 식구는 아무도 못 말려(최치림 연출)’ 등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인기는 점점 상승했다.

내성적이던 선생은 항상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가져 연극이 끝나면 무대 뒤로 숨는다. 그런 선생이 커튼콜로 다시 무대 위에 조명을 받고 나타나면 관객의 환호가 쏟아졌다. 연극배우의 인기는 결코 외모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선생이다.

그는 그의 내적 콤플렉스를 무대 위에서 관객 각자가 지닌 위선적 사고에 정면으로 부딪쳐 풀어냈다. 그의 연기는 의사의 진단처럼 관객의 ‘상대적 비굴함’이란 과녁을 정확하게 겨냥했다. 그리고 스스로 놀랬다. 어느 작품이든 그는 작가의 의도를 먼저 파악한 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무대를 휘졌고 있었다.

배우 추송웅은 작품의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연출자가 있으면, 끝없는 토론을 벌이고 결국은 당신 뜻대로 인물을 자기화 시켜 무대를 장악했다. 그래서 추송웅이란 배우는 호불호가 많은 배우였다. 그리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추송웅 선생은 초기작품인 정극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김정옥 연출)’에서는 정의로운 변호사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최인훈 작, 김정옥 연출)’에서는 바보 온달 역으로 진지하고 과묵하고 정의로운 모습을 연기한다. 이들 작품을 통해 그는 자신의 내면의 또 다른 정체성을 보이고 있다.

배우. 인물평론가.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역임. 1968년 연극 ‘불모지’로 데뷔, 수많은 연극 영화 TV드라마에 출연한 배우. 대표작으로는 모노드라마 ‘별의 노래’와 연극 ‘햄릿’ ‘동키호테’ 등, 영화 ‘남영동 1985’ ‘마더’ ‘그때 그사람’ 등, TV드라마 ‘보이스’, ‘아이리스’ ‘제4공화국’ 등이 있다. ‘극단 자유’ 소속으로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연극제에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국제예술협회 영희연극상,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현대연극상 연기상, 서울 연극제 연기상, 최우수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배우술은 연륜을 거듭할수록, 더욱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그를 좋아하는 관객은 계속 늘어갔다. 관객의 지지에 힘입어 그는 ‘피터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타피스트’, ‘프로랑스는 어디에’, ‘대머리 여가수’, ‘보이체크’, ‘환타스틱’, ‘도적들의 무도회’ 등에 연이어 출연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본인의 집념을 담은 연극 한편에 도전한다. 무대 위의 독재자 안하무인의 배우 추송웅은 자신과 닮은 원숭이에 심취한다. 그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의 보내진 보고’를 읽고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모노드라마를 만든다.

추송웅은 창경원(지금의 창경궁)에 가서 원숭이를 몇 달을 두고 관찰한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이 연출하고 제작 출연하는 ‘빨간 피터의 고백’ 공연에 빠져든다. 분장을 한 원숭이, 무대 위의 그는 영락없는 원숭이였다. 인기의 정점에 선 그에 대한 관객의 관심은 최고점에 오른다.

드디어 ‘빨간 피터의 고백’의 막이 열린다. 영락없는 원숭이가 나타나며 연설을 한다. 과연 명불허전, 배우 추송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초연 무대가 된 ‘삼일로 창고극장’은 그의 연기에 빠져든 관객의 땀이 가득 찼다. 신기 들린 사람처럼 그는 2시간을 연기한다. 연극사상 유래가 없는 대박 공연이었다. 인간 추송웅이 자신의 못남보다 더 못난 원숭이로 변신해 성공한 무대다. 무대 위의 추송웅이 위대함을 선포한 날이었다.

대성공은 욕심을 낳았다. 늘 따라 다니던 가난은 연극 한편에 전화위복이 된다. 그는 그 여세를 몰아 모노드라마 ‘우리들의 광대’를 만든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에 도전하듯 전국의 관객이 부르면 달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심장이 멎었다. 그의 무대는 컴컴한 암흑으로 변했다 그리고 44라는 불길한 숫자의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죽음을 향한 불나방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무대에서 관객과 만났다. 배우는 관객이 응원하면 힘이 두 배로 생긴다는 것은 정설이다. 배우에게 무대가 없는 세상은 죽음의 세계이다. 추소웅 배우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는데 그가 배우 함현진이다.

예나 지금이나 배우를 짓누르는 아픔은 가난과 외로움이다. 바로 함현진이라는 배우는 외로움에 자살한 배우다. 오늘 날 추송웅과 함현진이 살아 있다면 연극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추송웅 선생의 딸 추상미는 아버지를 따라 무대공연을 구경하다 배우가 된다. 한 시대는 이렇게 연극처럼 피었다 저물어 간다. 그리고 이어진다.

※ 본지에 실린 칼럼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 뉴스코프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배우 권병길